소변검사 조작 대형 병역비리… ‘80명 리스트’ 확보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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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프로야구 선수와 연예인, 대학생 등이 소변검사를 조작해 무더기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들이 병역비리 브로커를 통해 1996년부터 8년여 동안 소변검사 조작 수법으로 병역면제를 받아왔는데도 병무청의 신체검사 과정에서 전혀 적발이 되지 않아 허술한 병무행정의 재정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5일 프로야구 선수 등에게서 각각 3000만∼4500만원씩, 모두 20여억원을 받고 신체검사 과정에서 신장질환이 있는 것처럼 속여 병역을 면제받도록 해준 혐의(병역법 위반)로 5일 브로커 우모씨(38)와 김모씨(29·전 프로야구 2군 선수)를 구속했다.

경찰은 또 이들에게 돈을 주고 실제 병역을 면제받은 L구단 소속 김모씨(23)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손모씨(23)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프로야구 L구단 소속 서모(24) 김모씨(27), S구단 소속 윤모씨(26), 고교야구 감독 엄모씨(28), 회사원 이모(25) 김모씨(23) 등 전현직 야구선수 6명에 대해서도 6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로써 병역비리 사건으로 구속됐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전현직 야구선수는 모두 10명으로 늘어났다.

경찰은 브로커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전현직 야구선수와 축구선수, 연예인, 직장인, 대학생 등 80여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입수하고 이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자의 절반이 야구선수이며 나머지 연예인과 대학생 등도 대부분은 야구계 인사를 통해 브로커를 소개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병역법 공소시효(3년)에 관계없이 명단에 적힌 80명을 모두 수사할 방침이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야구계 “출범후 최대위기”▼

병역비리 수사 대상자의 절반가량이 야구선수로 알려지자 프로야구계는 “1982년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인 4일과 5일에도 프로야구 경기는 계속됐지만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 구단은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 중간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상국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국민의 기본의무인 병역을 기피한 혐의는 어떤 논리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프로야구는 도덕성 논란을 넘어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프로야구뿐 아니라 프로 스포츠 전반에 걸친 구조적 비리라는 점. 프로선수들이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올림픽 3위 이내 입상, 아시아경기 금메달, 월드컵 축구 16강뿐이다.

이처럼 병역특례 규정이 까다롭다 보니 전체 프로선수 중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20대 초중반이면 선수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성기. 선수들은 이 나이에 입대해 군복무를 하면 선수생활이 중단됨은 물론 제대해도 재기 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이들이 브로커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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