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양성우, “새우잠”

  • 입력 2004년 8월 27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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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잠

- 양성우

적수공권일 때에는 모래바람 진흙길도

두렵지 않다.

아무리 허덕여도 줄지 않는 힘든

일들까지도.

차라리 남루는 운명이라고 치자.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저 꿈들은 유난히

빛나고,

어둔 수렁 속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구부려 자는 새우잠도 너무나 달다.

어디에 괴로움이 없는 인생이 있는가?

참 깊은 사랑의 마음이 고단한 몸을

붙들어준다.

흰 물살 굽이치는 큰 강을 건너고

시퍼렇게 날 선 칼 위에 맨발로 설지라도.

- 시집 ‘물고기 한 마리’(문학동네) 중에서

새우잠을 자도 고래 꿈을 꾸라고 쉽게 말하지는 않겠네. 뜨거운 낮 동안 무슨 일로 더위를 먹었는지도 묻지 않겠네. 고단한 삭신, 저린 발, 쑤시는 허리, 뒤숭숭한 꿈자리를 쉬이 아는 체하지 않겠네.

‘참 깊은 사랑의 마음’도 아는 체하지 않겠네. 그러나 깊고 어두운 수렁에도 날마다 아침햇살이 들고, 새들이 노래하고, 꽃들이 피어나 밤새 웅크린 자네의 등을 툭툭 흔들어 깨우는 저 마음이 혹 그 마음 아닌지 몰라. 아침에 눈뜬 그 축복으로 하루를 사시게.

어어, 몸 뒤척이지 말고 푹 주무시게. 새벽이슬에 자네 몸 젖을까봐 호박잎 토란잎 당기어 홑이불 대신 덮어주었네.(자네 재우고 그저 나 홀로 드는 생각. ‘왜 새우는 대양·大洋에 살아도 새우잠을 자며, 고래는 연안에 떠밀려 와도 허리를 구부리지 않는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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