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기 어떻습니까]<1>개인택시 운전사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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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 경력 30년째인 박범렬씨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종승기자
택시 운전 경력 30년째인 박범렬씨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종승기자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다 고(高)유가에 따른 물가상승까지 겹치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생활고로 너나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택시운전사와 시장 상인들은 손님이 없어 한숨만 내쉬고 있다. 불황 때마다 경기를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던 건설 경기마저 꺾이면서 부동산업체는 개점휴업 상태고 이사하는 사람이 줄면서 이삿짐센터도 일감이 떨어졌다. 경기회복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이제 기대감도 접고 체념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본보는 불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생생한 속사정을 듣고 서민들의 고민과 ‘민생(民生) 경제’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벌써 1시간째다.

24일 오후 4시. 개인택시 운전사 박범렬(朴範烈·55·경기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씨는 입이 버썩버썩 말랐다. 목 좋기로 소문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앞에서 1시간이나 손님을 기다렸지만 허탕이었다. 박씨 앞뒤로 다른 택시 30여대가 줄지어 있었다.

“택시 운전을 30년간 했지만 요즘 같은 땐 없었어요.”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박씨는 요즘 하루 19시간 일하고 14만원을 번다. 연료비 5만원을 뺀 9만원이 하루 순수입. 그는 “1시간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이 4700원인 셈”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도 시간당 평균 1만원의 순수입을 올렸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승객은 없는데 주행거리만 늘어난 것도 걱정이다. 올해 초엔 하루 220km 정도 달리면 목표 수입을 채웠다. 지금은 빈 차로 다니는 시간이 많아 주행거리가 400km를 넘기 일쑤.

박씨는 올 2월부터 위기를 느꼈다. 이때부터 한 달 평균 순수입이 180만원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 지난해 한 달 순수입은 250만원 안팎이었다.

“출퇴근 시간대 벌이가 시원찮아 공치는 날이 많아졌어요.”

24일도 그랬다. 박씨는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난 것.

‘아뿔싸!’ 박씨는 서둘러 전화기를 들었다. 콜센터에 영업 시작을 알려야 했다. 박씨는 일산지역 택시 운전사들이 연합해 만든 콜택시 소속이다.

“언제쯤 손님을 받을 수 있나요?”(박씨)

“50분쯤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운전사 100여명이 먼저 신청했어요.”(콜센터 직원)

박씨는 오전 6시50분에야 서울 종각으로 가는 손님을 맞았다. 이래선 서울에서 장거리 출근 승객을 태우기 어렵다.

박씨가 출근 시간대인 오전 7∼9시 올린 수입은 2만5000원. 하루 목표액인 14만원 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박씨는 머릿속에 지도 한 장을 펼쳤다. 30년 운전 경력을 통해 터득한 승객 밀집지역 표시 지도다.

그는 시간대별 동선(動線)을 정했다.

‘오전 10시 마포 홀리데이인호텔, 오후 1시 서울역, 오후 3시 여의도 LG트윈타워, 오후 5시 신촌 현대백화점.’ 고참 운전사만 아는 이른바 ‘베테랑 포인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가는 곳마다 빈 택시가 20∼30대씩 늘어서 있었다. 그는 “낮 시간 동안 기본요금 거리를 가는 손님 5명밖에 못 태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퇴근 시간마저 승객이 뜸했다.

오후 7시 명동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차를 타면서 말했다. “요즘 여자 승객을 노린 택시 강도가 많다니 해만 지면 택시 타기가 겁나요.”

실제로 밤에 택시를 타는 사람도 부쩍 줄었다. “밤 11시경 유흥가 인근 지하철역 주변에 가면 승객보다 택시가 더 많아요.”

박씨는 이날 밤 12시 지하철 7호선 광명역 인근에서 만취한 승객을 태웠다가 낭패를 봤다. 손님이 요금을 낼 수 없다며 버틴 것. 박씨는 실랑이 끝에 7200원을 내고 아까워하는 손님을 보면서 자신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박씨는 최근 딸의 대학등록금 309만원 때문에 은행 빚을 졌다. 집도 줄여야 할 판이다.

“한 달 수입 180만원으론 생활이 안 됩니다. 정부는 걸핏하면 경제가 괜찮다고 주장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대통령이 제발 서민의 고통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꼭 오전 5시에 콜센터로 전화해야지.’ 25일 오전 1시가 넘어 귀가한 박씨. 그는 여전히 ‘운전 중’이었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다음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삿짐센터 사장의 이야기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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