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6년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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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

1989년 8월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의 주범 김동술 고금석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사건 발생 3년 만이다.

서진룸살롱을 피로 물들인 ‘조폭(組暴)’간 살육전은 그 잔혹한 수법 때문에 세상을 놀라게 했다. 생선회칼로 아킬레스건을 끊고 가슴을 난자했다. 네 구의 시체는 승용차로 싣고 가 병원 응급실 입구에 내던졌다.

주먹세계에 생선회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1월 ‘사보이호텔 습격사건’ 때. 당시 호남파의 기린아 조양은이 진두지휘했다. 이때부터 조폭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각목 대신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는’ 금속성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사보이호텔 사건은 조폭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김두한 이정재 유지광 이화룡 등 ‘1세대 주먹’의 뒤를 이어 서울 명동 일대를 장악했던 ‘신상사파’가 붕괴됐고, 주먹세계의 ‘호남천하’가 열렸다.

이후 김태촌과 조양은이 번갈아 범(汎)호남파의 ‘지존(至尊)’으로 군림하며 주먹세계를 양분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의 영남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지하세계는 호남주먹이 장기집권(?)하고 있었다.

조폭과 권력은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라던가.

주먹세계를 맨 처음 정치로 오염시킨 장본인은 ‘장군의 아들’이었다. 김두한은 ‘서울의 뒷골목’을 정치판에 끌어들였다. 좌우(左右) 사상대립이 극심하던 해방공간에서 우익폭력의 선봉으로 좌충우돌했다.

이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권력의 필요에 따라 ‘정치깡패’들이 수시로 동원된다. ‘각목’은 야당 정치집회에서 빠지지 않는 소품(小品)이었다.

1990년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조폭은 잠행했다. 한동안 존재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은 때로는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 때로는 철퇴를 맞으면서 끊임없이 변신하며 진화(進化)해 왔다.

청와대와 검찰 안기부의 고위층이 줄줄이 구속됐던 1993년 정덕진의 슬롯머신 사건은 이들이 ‘노는 물’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DJ 정부 때는 ‘호남커넥션’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용호 게이트’ 등에서 보듯 기업합병에 관여하거나 벤처사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격(?)을 높여갔다.

그동안 축적된 자본과 인맥을 바탕으로 ‘금융마피아’로 사업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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