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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1일 19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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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람이 하는 재판에서 진실을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렵고, 상황과 주변 여건에 따라 상반되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흑인 미식축구 스타인 O J 심슨이 백인인 전처(前妻)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은 재판에서, 형사 사건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민사 재판에서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일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당시 심슨은 형사 재판에서 흑백 인종갈등을 이용하고, 거액을 주고 고용한 거물 변호사 덕분에 무죄 평결을 받았다는 비난이 무성했다.
▷재판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보편적 진실이라고 인정받는 자연과학의 지식들도 그 객관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다. 1970년대 이후 ‘과학지식의 사회적 구성론’을 주장하는 일단의 사회학자들은 과학적 지식이 객관적 관찰에 의해 얻어진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단지 과학자들 사이의 사회적 협상과 합의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이 주장을 일축하고 있지만, 과학지식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요즘 정치권에서 친일 진상 규명이니, 의문사 진상 규명이니 하며 과거 사건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수많은 실험을 거쳐 확립된 과학법칙도 그 객관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시작부터 의견이 갈려서야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일은 애당초 어려워 보인다. 결국 송씨 재판처럼 사람마다 ‘서로 다른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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