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인문사회]‘철학학교 1’…방황하는 10대를 위한…

  • 입력 2004년 6월 18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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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화가 M C 에셔의 ‘그리는 손’은 끝없이 이어지는 인과적 고리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사진제공 창비
네덜란드 화가 M C 에셔의 ‘그리는 손’은 끝없이 이어지는 인과적 고리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사진제공 창비
◇철학학교 1/스티븐 로 지음 하상용 옮김 김태권 삽화/268쪽 1만원 창비

미래의 어느 날 클론 박사의 실험실에 한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어떻게 오셨죠?”

“우리 부부는 아기를 갖고 싶어요. 특히 여자아기를 원합니다. 박사님, 가능하겠습니까?”

저자인 스티븐 로 교수(영국 런던대·철학)는 이런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성의 자의적 선택과 유전자 조작 등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 아기의 성을 선택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성의 자의적 선택을 반대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남자가 여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은 증명된 적이 없다. 그런 선호는 분명히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다.… 부모들의 이런 자기중심적 태도는 아이들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제시한다. “일부가 부당한 이유로 성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성 선택권을 박탈하려 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딱딱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철학’을 청소년들의 눈높이로 낮춰 설명한다. 대화 형식과 서술 형식을 병행하며 철학의 주요 논제들을 함께 토론한다.

1권에서 다루는 논제는 ‘세계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동성애는 무엇이 잘못인가’,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 ‘창조론은 과학적일까’ 등 12개. 7월 초에 출간 예정인 2권에서는 이 밖에 13개의 주제를 더 다룬다.

우편집배원 출신으로 뒤늦게 철학을 공부해서 교수가 된 저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무렵의 나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의 자신처럼 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집필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논제들은 모두 철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온 문제들이다. 난해한 주제들이지만 저자는 이를 쉽게 풀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하나의 방향으로 독자들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대신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독자들이 직접 생각해서 판단하도록 길을 열어준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목적은 철학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직접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는 유전자 조작의 타당성, 유전자 조작의 기술적 위험성, ‘맞춤 아기’ 생산 욕구와 그로 인한 윤리적 문제, 유전공학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계급분화 등으로 이어진다.

저자의 기본적 입장은 성의 선택이나 유전자 조작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만, 그와 반대되는 입장도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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