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석/한국경제 체력부터 키워야

  • 입력 2004년 5월 17일 19시 14분


지금 한국경제는 위기로 가고 있는가. 지금도 모든 국민이 1997년 외환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아직도 많은 국민이 그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다시 그런 돌발적 위기상황으로 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정부의 시각인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현재 상황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구인-구직난 공존하는 노동시장▼

과연 그런가. 우리 경제가 다시 위기로 갈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우리 경제의 체력을 따져보면 예측할 수 있다.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도 폐렴과 같은 중병으로 도질 수 있듯이, 체력이 약한 경제는 유가 상승이나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같은 일시적인 충격만으로도 위기를 겪을 수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도 우리 경제의 체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외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당한 급성 경제위기였다.

한 나라 경제의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그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유연하고 생산적인가에 달려 있다. 국가경제도 하나의 생산단위다.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생산자원을 투입해서 그 나라 국민이 원하는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다. 이 과정에 투입되는 투입량과 산출량의 비율이 국가생산성이다.

국가생산성이 높은 경제가 바로 국민소득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경제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서 경제위기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국가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국가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논리적으로는 간단하다. 투입량과 산출량의 비율을 높이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요소의 공급과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생산요소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사람이다. 이를 공급 배분하는 시장이 바로 노동시장이다. 지금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고 있다. 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 아니다. 다른 생산요소 시장인 자본시장과 토지시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은 그만큼 경직돼 있다. 생산요소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하는 만큼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체력은 떨어지게 돼 있다.

심장마비와 같은 갑작스러운 질병만이 아니라 암과 같이 서서히 진행되는 질병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듯이 나라의 경제도 외환위기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만 위기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가 오는지도 모르게 서서히 경쟁력을 잃으면서 죽어갈 수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10여년째 계속 하락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8%대였던 1980년대 말에는 연 10%는 성장해야 호황이라고 생각했고, 6%만 돼도 불경기라고 아우성을 쳤다. 지금 잠재성장률은 4%대다. 이젠 성장률이 5%만 돼도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좋아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다른 선진국들도 모두 경험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지금 1만달러 소득 수준에서 너무 일찍 노화증세를 보이고 있다. 만약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잠재성장률이 0%가 될 수가 있다. 이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지고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마이너스 성장이 반복되고, 1%의 성장에 감사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1만달러’서 너무 이른 노화증세▼

이것이 지금 한국경제가 향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다. 올해 성장률이 작년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놓고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외환위기라는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암세포가 우리 경제 곳곳에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 경제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 이름 모를 이 난치병이 우리 경제의 마지막 숨을 끊어 놓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과제다. 이념과 노선의 문제가 아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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