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허점투성이 ‘軍인사시스템’

  • 입력 2004년 5월 3일 18시 51분


“이제 외과 치료를 할 때가 됐다.”

최근 국방부 인사추천심의위원회가 과거 비리 혐의로 전역된 예비역 대령 이모씨를 군 요직의 후보로 선정했다가 보류해 물의를 빚자 국방부 안에서 나오는 자성의 소리다.

이씨는 2001년 장군 진급이 확정된 후 군납 컴퓨터 업체들로부터 1000여만원의 현금과 향응을 받았다가 진급 취소와 함께 옷을 벗었다.

이후 이씨는 모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올 4월 국방부의 개방형 직위인 정보화 기획관(소장 계급의 국장급) 자리에 응모했다. 이 자리는 군의 정보기술(IT) 분야를 총괄하며 수천억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요직.

하지만 국방부의 인사시스템은 허점투성이였다.

이씨가 제출했던 자기소개서, 직무수행계획서, 신원진술서, 이력서 어느 곳에서도 국가공무원법 제33조 5항(공무원 임용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파면당한 자’를 찾아낼 수 없었다.

국방부 차관 등 7명으로 이뤄진 추천심의위는 결국 이 ‘부실 서류’를 기준으로 평가와 면접을 실시했고, 이씨는 중앙인사위원회에 추천할 복수 후보 2명 중 1명으로 선정됐다.

군 정보기관이 중앙인사위 추천 직전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이씨는 비리 문제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소장 직급으로 ‘승진’할 뻔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뒤늦게라도 군정보기관이 이씨의 문제를 적발했으니 된 것 아니냐”며 큰 잘못이 없었다고 강변했다.

군의 인사검증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은 3월 말 국방부 시설본부장 박모 준장이 과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문제는 그때도 철저한 인사검증을 강조했던 조영길(曺永吉)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가 이번에도 똑같은 원칙론만 판에 박힌 듯 되풀이했을 뿐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국방부 내부에서조차 “내과 치료만으론 안 된다”며 “매번 효과도 없는 약만 써 온 수뇌부의 안이한 처방 말고 외부의 날카로운 메스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군 수뇌부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가.

최호원 정치부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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