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한나라, 西쪽으로도 가야

  • 입력 2004년 4월 27일 18시 47분


4·15총선 결과를 정당별 색깔로 표시한 전국 지도를 보고 이런 상상을 해 봤다. 호남의 민주당, 충청의 자민련 의석수만큼이라도 한나라당이 그 지역에 진출했으면 그림이 참 좋겠구나 하고. 그렇게 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모두 전국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총선 결과를 놓고 지역주의가 완화됐다느니, 아직 멀었다느니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기류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의 벽은 여전히 높고 두꺼웠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지역에 대한 정당의 독점적 지배 정도를 따져보는 것은 지역주의 측정의 한 방법이다. 지난 주말 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자는 “한 정당이 경쟁 정당의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흔할수록 지역주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호남의 관계가 그렇다. 한나라당은 호남 31개 지역구 중 24곳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비례대표 안정권에 호남 배려 케이스로 3명을 포함시키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별다른 선거운동도 없었다. 이러니 지역구 득표율 1% 이하, 정당 득표율 2∼3%란 초라한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열린우리당이 영남 전 지역에 후보를 내고 상당한 공력(功力)을 들인 것과 대조적이다. ‘정권 프리미엄’을 100% 활용한 여당과 그렇지 못한 야당의 공천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탄핵 후 폭풍’ 속에서 후보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점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원내 제1당(16대)으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비켜 가기는 어렵다. 지망자가 나서지 않는다고, 후보를 내도 낙선이 분명하다고 그렇게 내버려둬도 되는가.

이번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오래전부터 호남을 방치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주요 당직에도 호남 사람은 거의 없다. 정권의 편중 인사를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균형 잡힌 인사를 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터지면 부산과 대구로 달려가기에 바빴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가 최근 몇 년간 대선과 총선에서 호남의 표심을 잡지 못한 한 이유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호남 사람도 한나라당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버려야 한다. 그들 마음속에 자리한 뿌리 깊은 당파심을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호남 사람이 야속하다며 손놓아 버린 한나라당은 더 문제다. 바른 정치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까지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아니던가.

지금 한나라당 안에서는 당의 노선과 관련해 왼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고 북한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바로 서(西)쪽으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치우치고 기운 것을 바르게 고쳐 가는 것이 박근혜 대표가 말하는 ‘보수(補修)’가 아니겠는가.

한나라당은 쉽지는 않겠지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정당명부제 같은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없는지도 헤아려 봐야 한다. 취약지역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책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는 정성(精誠)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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