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33>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2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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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줄만 남은 法 ③

“그렇습니다. 부월(斧鉞)이 정수리에 떨어져도 조용히 받아야 하는 것이 항자(降者)의 처지입니다. 다만 함양에는 아직도 한사코 항복을 마다하는 무리가 있어, 우리 대왕의 행차를 가로막거나 불측한 일을 꾀할까봐 미리 시일을 알려드리려 하는 것뿐입니다. 또 패공께서도 이 일을 미리 알지 못하시면 오해로 뜻 아니 한 변괴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함양에서 온 사자가 얼른 그렇게 말해 날카로워진 장량의 감정을 달랬다. 그래도 장량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하나, 항복의 예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더욱이 이 항복은 장수와 장수 사이의 일이 아니라, 임금이 나라를 들어 바치는 것이니 그 법식 또한 엄중하지 않을 수 없소.”

다짐받듯 그렇게 말하는 장량의 목소리에는 야릇한 떨림 같은 것이 있었다. 패공도 그런 장량의 별난 감회를 알 듯했다.

(저 사람이 아직도 옛 조국 한(韓)나라를 잊지 못하고 있구나. 시황제의 군대가 한나라를 멸망시키던 날의 기억 때문에 저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 같다. 장수로 부리기에는 지나치게 부드럽고 너그럽다고 여겨지던 성품이 그날의 원한으로 저렇듯 모질고 차가워졌구나.)

패공은 속으로 그렇게 헤아리면서도 내색 없이 사자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진왕(秦王)은 언제 항복해 온다고 했소?”

“우리 대왕께서는 이틀 뒤 열아흐렛날 묘시(卯時)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진시(辰時)에 궁궐을 떠나 사시(巳時)에 위수(渭水)를 건널 작정입니다. 이곳 패상에 이르기는 신시(申時)가 지나야 될 것입니다.”

“알았소. 군사 한 갈래를 위수 남쪽으로 보내 기다리게 하다가 진왕의 행차가 이르면 호위토록 하겠소. 나는 미시(未時)에 지도정(지道亭)으로 나가 기다릴 것이오. 아울러 진왕께 우리 자방(子房)선생의 뜻도 어김없이 전하시오.”

지도정이라면 패상에서 동북쪽으로 몇 십리 올라가 있는 정(亭·10리에 하나씩 있는 하급 관청)이었다. 패공이 그곳까지 진왕을 마중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그 항복을 무겁고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 되어 장량이 살포시 이마를 찌푸렸으나, 패공은 못 본 척 그렇게 말하고 사자를 돌려보냈다. 사자는 밤길을 되짚어 함양으로 돌아갔다.

이틀 뒤 패공은 관영(灌영)에게 5백기(騎)를 주어 위수 나루 남쪽에서 진왕 자영(子영)을 기다리게 했다. 사자가 말한 대로 자영은 사시 무렵 하여 위수를 건넜다.

머리를 풀어 내린 자영은 흰옷 차림에 수대(綬帶)를 목에 감고 흰말이 끄는 하얀 수레를 타고 있었다. 수대는 패옥(佩玉)이나 패인(佩印)을 매다는 띠인데, 그걸 목에 감았다는 것은 스스로 목매는 시늉으로, 죽고 사는 것을 모두 처분에 맡긴다는 뜻이었다. 달포 전에 옥관(玉冠)을 쓰고 화불(華불·옥새를 매다는 띠)을 허리에 두른 채, 누런 비단 덮개를 한 천자의 수레에 올라 칠묘(七廟)를 배알하던 위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영을 따르는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바위도 뚫고 지나간다던 대진의 수십만 밀집보갑대(密集步甲隊)는 다 어디 가고 늙고 쇠약한 병졸 몇 십 명이 수레를 에워싸고 있을 뿐이었다. 한때는 아방궁 대전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는 조신(朝臣)들도 모두 흩어져 자영을 따르는 것은 몇 안 되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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