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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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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둔한 사람들은 길고 긴 인과연(因果緣) 속의 고리를 제멋대로 절단해 잘된 것은 자기 탓, 잘못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린다. 탄핵 이후 찬반 소용돌이가 바로 그렇다. 사태의 마무리를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판결에 따르는 것이 민주시민의 바른 자세다. 국회 난장판의 원인제공자가 누구인가를 따지면 대뜸 시비 판단이 나온다.
▷찬반 데모대가 국론을 어지럽힌다. 법을 지키지 않고 떼거리로 국사를 결정하려면 법 만드는 국회의원은 왜 뽑나? 다수결원칙을 무시하려면 왜 굳이 다수당이 되려고 하나? 사람은 누구나 누대의 선조들의 후손이고 그 또한 남의 조상이 된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숙명의 고리에서 벗어난 인간은 없다. 요즘 서울에 인간의 고리에서 해방된 듯한 별종의 인간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곧 사과했다지만 60, 70대의 투표권 행사를 비웃은 정치인은 생로병사의 고리를 벗어난 사람일 게다.
▷번영하는 사회는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가 촘촘한 그물눈으로 맞물려 잘 짜인 공동체다. 쇠퇴하는 사회는 권리 따로, 책임 따로 벌어져 그물이 성기고 흐트러진 경우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세금 적게 내고, 병역 피하고 반(反)정부 운동을 한 사람들의 한국이 도래하고 있는 듯하다. 소수의 부패한 인물 때문에 그간 열심히 일하고 각종 국민의무 다하고 살아온 대다수 기성세대가 도매금으로 퇴장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옛날 고려장 얘기처럼 숙명적인 세대교체는 다음 세대에도 온다. 이 시대의 정신적 지주인 김수환 추기경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모욕한 후배 신부의 독선과 오만함에서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쉽게 대물림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짐하게 된다.
김병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pjkim@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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