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병호/외국은행이 밀려오는데…

  • 입력 2004년 2월 2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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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함에 따라 국내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은행은 은행업뿐 아니라 증권 등 제반 금융업을 영위하는 세계 최대의 종합금융그룹이다. 규모나 명성, 네트워크 등 모든 면에서 국내은행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융권 영향 면밀히 검토해야 ▼

그간 국내은행들은 합병 등을 통해 규모를 키워 왔지만 산업자본의 은행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는 규제로 인해 대형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 은행법상 동일인이 은행 주식의 10%까지는 자유로이 소유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을 소유하고자 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얻으면 된다. 그러나 산업자본의 경우 은행 주식 소유한도는 4%로 제한되며,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금감위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도 최대 소유한도는 10%로 제한된다. 이 밖에도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 등으로 산업자본의 은행진입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산업자본이 아니면 은행을 인수할 만한 재력가가 없는 현실에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자는 사실상 외국자본으로 한정된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매각된 은행의 대부분이 외국자본, 특히 외국사모펀드로 넘어갔다. 물론 외국자본이라 해서 국내자본과 특별히 차별해야 할 이유는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국자본의 기여는 매우 컸다. 금융회사의 자본 확충은 물론 지배구조와 투명경영 제고에 기여한 것이다. 또 산업자본이 금융, 특히 은행을 지배하게 되면 부작용이 적지 않다. 경제력 집중과 계열사 부실이 은행 부실로 연결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업자본의 지배를 막기 위해 자본의 성격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검토하지 않고 다수의 은행을 외국자본의 지배로 넘기는 것 또한 이에 못지않게 부작용이 클 수 있다. 멀리는 97년 단기 투기이익을 노린 헤지펀드들이 일시에 빠져나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겪은 금융위기, 가깝게는 최근 LG카드사에 대한 지원과 관련한 외국계 은행들의 행태가 그 사례다. LG카드 건의 경우 협상대표가 사전에 합의한 것을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한 행위는 분명 정상적인 거래관행과 신의를 저버린 것이다. 이 밖에 산업 기밀 등 중요한 정보를 가진 은행이 외국자본에 의해 지배될 경우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각국은 일반기업과 달리 은행업의 진입과 경영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비영주권자가 가진 은행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 바 있고, 아직도 은행 인가 때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심사 대상이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가 은행의 대주주는 물론 경영자에 대해서도 엄격한 적격성 심사(fit and proper test)를 실시하고 부적격자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영국의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 임원 등 주요 담당자를 선임할 때 엄격한 적격성 심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며, 독일의 금융감독청은 적격성 심사는 물론 금융기관이 무자격자를 경영자로 선임한 경우 그 해임을 요구할 수 있고 긴급한 경우 해당 금융기관을 폐쇄할 수도 있다.

▼내외국인 구별없는 검증을 ▼

우리의 경우 관계 법규에 외국인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은행업 또는 금감위가 정하는 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자유치라는 명분에 밀려 이에 대한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은행장 등에 대해 종래에는 실질적인 자격 심사를 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관치금융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이를 폐지하고 형식적인 결격요건 해당 여부만 확인하고 있다.

감독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내외국인을 구분함이 없이 은행의 지배주주와 최고경영자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강병호 한양대 교수·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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