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실][문학예술]'우리들의 하느님'

  • 입력 2004년 2월 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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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원들이 31일 오전 당사앞에서 경선자금 편파수사에 항의, 삭발시위를 벌이고 있다.[연합]
민주당 당원들이 31일 오전 당사앞에서 경선자금 편파수사에 항의, 삭발시위를 벌이고 있다.[연합]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지음 /220쪽 6000원 녹색평론사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화두로 떠오른 시대, 소비가 미덕인 시대라고 한다. 공부 기술이나 아침형 인간,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을 다룬 책을 학교도서관에서 찾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란 유용한 정보의 습득 이상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가정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서점에 가면 입시에 곧바로 도움이 될 것 같은 실용서를 고르는 모습을 자주 본다. 책 읽기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조급하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알찬 실용서의 출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우리 아이들의 책 읽기 목록에서 실용서는 되도록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학(放學)에는 말의 참뜻을 되살려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는 책보다는 읽으며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책, 읽는 이를 흔들어대는 책을 찾을 일이다.

방학에 더 바쁜 아이들을 보면서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는 책으로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이 있다. 저자는 청소년들에게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로 친숙한 작가. 당하기만 하고 베풀기만 하는 몽실언니의 삶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아이들과 함께 나는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싶다.

이 책에 실린 산문 한 편 ‘영원히 부끄러울 전쟁’을 읽다보면 문학적 창조물로서가 아닌 실제 인물로 전쟁을 겪으며 묵묵히 살았던 수많은 몽실언니를 만날 수 있다. 첫 장 ‘유랑 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에 담긴 선생의 삶은 오롯하게 감동을 전해준다. ‘효부상을 안 받겠다던 할머니’에 담긴 상의 본질에 관한 질타, ‘태기네 암소 눈물’에 실린 인간 중심 사고에 대한 비판은 저자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나직한 음성에 실리지만 읽는 이에게는 쩌렁쩌렁함으로 증폭된다. 기획이 판치는 세상에서 아무런 꾸밈이 없는 표지, 재생지를 사용하여 가붓하게 들리는 책의 무게 또한 딱 권정생 선생의 삶이다.

이 책의 장점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말하되 어려운 용어나 논리가 아닌,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쉽고 명쾌하게 쓴 글에 있다. 그러나 살아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쉽게 풀었다고 소설 읽듯이 쭉쭉 읽히는 책은 아니다. 알고 있는 것과 몸에 배는 것은 또 얼마나 다른가. 천천히 읽게 하고,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책이다.

제목이 그래서 책 내용이 종교적이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참 종교인이 품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우리 것을 지키고, 자연의 본성을 따르며 살아야 할, 오래된 미래가 저자가 바라는 세상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슴에 남는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최근에 읽은 ‘콩깍지 사랑’(추둘란·소나무출판사)과 예전에 읽었던 ‘참꽃 피는 마을’(임의진·이레) ‘나무처럼 산처럼’(이오덕· 산처럼)이다. 이 책들을 통해 향기로운 사람을 만나는 시간으로 방학을 마무리하기 바란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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