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훈/시민단체 '알맹이' 채워야

  • 입력 2004년 1월 25일 18시 21분


국민 모두의 새해소망은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노무현 대통령도 연두회견에서 이를 국정의 기본목표로 세우겠다고 천명했을 것이다. ‘동북아의 중심국가 건설’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가 이제야 국민생활을 위한 정책방향으로 제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선거철이 가까워지기 때문인지 새해에도 관심의 초점은 온통 정치판에 쏠려 있는 듯하다. 정부는 국정의 기본 청사진을 하루빨리 제시해 경제 살리기에 국력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조직 위한 조직' 탈법운동도 ▼

최근에는 시민단체들이 경제살리기 운동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활동을 활발히 진행하는 가운데 시민의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수천개에 달하는 시민운동단체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해 그야말로 시민운동의 백가쟁명시대를 열었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부정적인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우리의 시민운동은 민족사의 전진에 큰 역할을 해 왔다. 독립운동과 건국운동, 그리고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등 거시적인 시민운동이 희생과 탄압 속에서도 계속됐다. 종래의 거시적인 시민운동은 가투와 농성, 단식과 삭발 등 하드웨어 위주의 과격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투쟁적인 시민운동의 결과로 현대 민주사회의 형식과 제도의 틀을 갖추게 됐고, 인권이 크게 신장됐기 때문에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높아졌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오늘날 수많은 전문적인 개별시민단체가 등장해 미시적이고 지엽적인 각종 운동을 전개해 나가게 된 것이다. 미시적인 시민운동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이 있겠지만 어용적이거나 목적과 수단이 모호한 시민운동을 과격하게 전개해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있다. ‘시민 없는, 직업적인 시민단체’가 등장해 기업경영 간섭 등 반사회적인 시민운동을 하거나 비대한 단체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편법적이며 탈법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 시민운동에 대한 기존의 좋은 평가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비대해진 시민운동단체가 미시적이고 투쟁적 운동을 계속하기 때문에 시민운동 자체를 시민이 외면하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박수와 성원을 계속받기 위해서는 시민운동단체가 자숙과 자정으로 구조조정을 솔선수범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바람직한 시민운동은 종래의 20세기 하드웨어식 투쟁형과는 달라야 한다. 조사·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21세기형 소프트웨어 위주로 승화돼야 한다. 시대적인 사명으로는 정부 기업 국민과 함께 경제살리기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며, 역사적인 사명으로는 제도와 형식만을 갖춘 현대사회의 틀 속에 알맹이를 채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정치의 형식은 있되 그 질서와 원칙이 부족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습은 마련했으나 그 윤리와 사상이 실종됐고, 복지사회의 외피는 있으나 그 철학과 내용이 결핍돼 있다. 거기에 알맹이를 채우는 방향으로 새로운 시민운동을 펼쳐야 한다.

‘이념대립의 후기냉전사회’와 ‘여야대립의 후기민주사회’와 ‘노사대립의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 야기되고 있는 과도기적인 ‘후기현상’을 청산하기 위한 보다 차원 높은 시민운동도 필요하다.

▼정치편향 탈피 '진정한 NGO'로 ▼

21세기는 ‘시민권력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시민권력 사회는 시민운동이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운동으로 승화될 때 가능하다. 올바른 시민운동은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사적인 이해를 초월해 진정한 시민운동단체(Net NGO)로 거듭나 우리의 21세기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종훈 중앙대 명예교수·경실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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