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그 앞엔 축구가 있었고 그 뒤엔 축구가 남았다

  • 입력 2003년 12월 8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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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물러나야 할 때”라고 담담히 말하고 있는 이회택 전 전남 감독. 전영한기자
“지금이 물러나야 할 때”라고 담담히 말하고 있는 이회택 전 전남 감독. 전영한기자
‘떴다 떴다 이회택, 날아라 날아라….’

이회택(57)은 축구가 최고의 국민스포츠였던 60∼70년대 1m67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골을 잡아내던 ‘국민스타’였다. 약관(66년)의 나이에 첫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회택은 “당시 대통령이 부럽지 않았다”고 했을 만큼 인기가 드높았다. 아이들은 ‘떴다 떴다 비행기’란 동요에 ‘이회택’이란 이름을 넣어 흥얼거렸을 정도.

‘그라운드의 풍운아’ 이회택이 최근 전남 드래곤즈 감독직에서 홀연히 물러났다. 복귀를 기약할 수 없는 사실상의 완전 은퇴. 그러나 1일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 만난 이 감독은 담담했다.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앞으로 감독을 다시 맡을 일은 없지 싶어요.”

이 감독에게 전남은 분신과도 같은 팀. 73년 창단한 포항제철(현 포스코)팀에서 실업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 감독은 86년 포항 아톰스의 감독을 맡아 92년 우승을 일군 뒤 미련 없이 감독직을 내놓고 물러났다.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 그 이유.

이 감독은 98년 전남 감독으로 다시 포스코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올 시즌(정규리그 4위)까지 6년 동안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감독 사퇴는 우승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였을까. 정반대다. 이 감독은 앞으로 한해 만 더 하면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더욱 컸다. 하지만 이미 누가 맡아도 잘할 수 있을 만큼 팀이 궤도에 오른 상황에서 자리에 탐을 내는 것은 ‘욕심’이라고 판단했다.

국가대표시절 이회택.

○ 국민가수 조용필의 첫 매니저

이회택이란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축구계의 맏형’ ‘축구계 마당발’이다.

“왜 그렇게 불리는지 난들 알겠어요. 누가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면 금전적으로는 못 도와주더라도 마음으로, 정으로 도와줬을 뿐인데….”

이 감독의 교유 폭은 축구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가수 조용필(53)의 첫 매니저가 바로 이 감독. 이 감독이 조용필과 처음 만난 것은 70년대 초. 조용필이 보컬그룹의 연주자로 있던 시절 이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의기가 투합한 두 사람은 곧바로 형(이회택)-동생(조용필)이 됐다.

그 후 이 감독은 75년 조용필이 공전의 히트를 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음반을 낼 수 있게 지원했고 ‘대마초 사건’으로 은퇴 기자회견을 할 때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 감독은 “매니저는 무슨…. 그저 옆에서 잠깐 도와줬을 뿐인데…”라며 정식으로 매니저를 맡았던 것은 아니라고 밝히면서도 “그땐 정말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근 10여년 연락을 못하다 최근 조용필씨 부인 상가에서 만났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 쿠엘류 감독 힘내시오

이 감독은 움베르토 쿠엘류 한국대표팀 감독(53)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70년 포르투갈 벤피카 소속이던 쿠엘류 감독이 팀과 함께 내한해 한국대표팀과 친선경기를 가졌고 당시 스트라이커 이회택을 전담 마크한 수비수가 쿠엘류였다.

이 감독은 “당시 1-1로 비긴 것은 기억나는데 쿠엘류가 나를 수비한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이 감독은 쿠엘류 감독이 “불쌍하다”고 했다. “월드컵 4강을 이룬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영광이 빛나는 이 시기에 쿠엘류 감독이 뭘 이룬들 팬들 마음에 들겠느냐”는 것.

이 감독은 쿠엘류 감독에 대해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마디로 ‘불여우’였던 히딩크 전 감독에 비해 쿠엘류 감독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는 것.

“히딩크 전 감독은 황선홍이나 홍명보 같은 머리 큰 선수들을 넣었다 뺐다 하며 자기 주관대로 주무를 만큼 선수들의 심리파악에 탁월했는데 쿠엘류 감독은 이미 단맛을 본 선수들의 해이해진 정신력을 휘어잡기는커녕 오히려 선수들에게 휘둘리는 것 같다”고 했다.

○ 나는야 영원한 축구인

이 감독은 고향 김포에서 ‘어린이축구교실’을 10여년째 운영 중이다. 전남 감독을 맡기 직전까지 대한축구협회에서 맡았던 직함도 유소년담당이사.

“이제 실업자가 됐는데 뭐 하겠어요”라며 농담처럼 말한 이 감독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짜 유소년 축구교실을 통해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의 원조로 꼽히는 이 감독이 현역 스트라이커 중 최고의 공격수로 꼽는 선수는 누굴까.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다”가 정답.

이 감독은 “그나마 안정환이 조금 낫다”고 평가한 뒤 “지금 청소년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정조국과 김동현이 발전해 한국 축구를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이회택은 누구

△생년월일=46년10월11일생 △출신지=경기도 김포 사우동 △신체조건=1m67, 75kg(현역 땐 63kg. 8년 전 담배 끊은 뒤 늘어) △가족관계=임애린씨(54)와의 사이에 1남1녀 △출신학교=동북고-한양대 △출신 팀 및 주요 경력=석탄공사-양지-포항제철. 한양대 감독, 포항 아톰스 감독, 90년 이탈리아월드컵대표팀 감독, 전남 드래곤즈 감독 △현역시절 가장 아쉬운 점=올림픽과 월드컵에 한번도 참가하지 못한 것 △통산 A매치 출전 경기수 및 득점=모름(축구협회에도 기록 없음) △취미=골프(80대 초반) △주량=소주 1병 정도(술이 약해 선수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다고 함) △잘 부르는 노래=허무한 마음, 불나비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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