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곰에서 왕으로'…신화로 본 현대문명의 '뿌리'

입력 2003-11-28 17:35수정 2009-10-1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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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에서 왕으로/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 지음 김옥희 옮김

/280쪽 1만원 동아시아

▽첫 번째 이야기= 어느 해 12월 26일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달리고 있는 베링행 초특급 열차 안. 흑여우 900마리를 잡으러 가는 사람, 빙하쥐 450마리의 목 부분 털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입은 사람 등이 떠들썩한 객차 한구석에는 누런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청년이 초라하게 앉아 있다. 갑자기 기차가 멈추고 곰들이 총을 들고 올라와 위협하며 사람들을 끌어내리려 하자 그 청년이 일어나 외쳤다. “곰들이여. 너희가 하는 짓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도 살기 위해서는 옷을 입어야 한다.… 앞으로는 지나치게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도록 주의할 테니 이번만은 용서해 주도록 하라.”

▽두 번째 이야기=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이슬람 테러분자로 보이는 자들이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 거대한 건물 두 채가 무너지고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다수의 미국인은 이런 ‘야만’적인 이슬람의 행위를 비난하며 서구의 ‘문명’국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슬람권에서는 이런 테러를 조장한 것이 바로 미국 중심적 독선이라고 비난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소설 ‘빙하쥐의 털가죽’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물론 ‘9·11’ 테러다. 일본 주오대(中央大·철학 및 종교학) 교수인 저자는 두 이야기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비서구문명에 대한 서구인의 오만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저자의 강의를 책으로 기획한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 시리즈의 두 번째 권. ‘야생적 사고의 산책’이란 의미의 ‘카이에 소바주’는 세계적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따온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며 비서구적 문명의 삶을 ‘야만’이 아닌 ‘야생’이라고 표현했고 신이치 교수는 이를 자신의 지적 행로에 주요한 이정표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인간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국가가 생겨나게 되고 이런 국가의 탄생은 곧 야만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 사랑하고 결혼하며 ‘대칭성의 사고’를 가지고 살았다. ‘대칭성의 사고’란 상대의 존재를 존중함으로써 나도 존중받는 조화와 공존의 사고다. 그러나 지식을 축적한 인간이 이 조화로운 대칭성을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자가 나타나고 국가를 형성하면서 ‘야만’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것. 저자는 ‘대칭성의 사고’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야만과 대립을 초월하는 불교적 사고를 제시한다.

고대의 신화부터 현대사회까지 넘나드는 저자의 자유로운 담론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신화를 통해 현대문명의 모습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은 음미해볼 만하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첫 번째 이야기는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소설 ‘빙하쥐의 털가죽’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물론 ‘9·11’ 테러다. 일본 주오대(中央大·철학 및 종교학) 교수인 저자는 두 이야기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비서구문명에 대한 서구인의 오만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저자의 강의를 책으로 기획한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 시리즈의 두 번째 권. ‘야생적 사고의 산책’이란 의미의 ‘카이에 소바주’는 세계적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따온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며 비서구적 문명의 삶을 ‘야만’이 아닌 ‘야생’이라고 표현했고 신이치 교수는 이를 자신의 지적 행로에 주요한 이정표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인간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국가가 생겨나게 되고 이런 국가의 탄생은 곧 야만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 사랑하고 결혼하며 ‘대칭성의 사고’를 가지고 살았다. ‘대칭성의 사고’란 상대의 존재를 존중함으로써 나도 존중받는 조화와 공존의 사고다. 그러나 지식을 축적한 인간이 이 조화로운 대칭성을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자가 나타나고 국가를 형성하면서 ‘야만’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것. 저자는 ‘대칭성의 사고’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야만과 대립을 초월하는 불교적 사고를 제시한다.

고대의 신화부터 현대사회까지 넘나드는 저자의 자유로운 담론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신화를 통해 현대문명의 모습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은 음미해볼 만하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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