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69…귀향 (3)

입력 2003-11-16 18:07수정 2009-10-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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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보잘 것 없는 밥상은 왜놈의 발길질에 뒤집혔고, 죽과 젓갈이 머리칼과 얼굴에 튈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굴욕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부심이었습니다. 나는 목숨을 걸고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는 작은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몸에 흐르는 모든 피가 역류하고, 윤세주! 윤세주! 윤세주! 하고 외쳤습니다.

작년 12월 동아일보가 복간되었을 때도, 나는 순수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아침밥도 먹기 전에 아버지가 읽어주었습니다.

“천도(天道) 무심치 않아 이 국토에 해방의 서기를 베푸시고 성조의 신의(神意) 무궁하시어 이 천민(天民)에게 자유의 활력을 다시 주시니 이는 오로지 국사에 순절한 선열의 공덕을 갸륵타 하심이오 동아에 빛난 십자군의 무훈을 거룩타 하심이라. 세계사적 변국의 필연적인 일면이라한들 이 하등의 감격이여 이 하등의 홍복(鴻福)인가.

일장기 말살 사건에 트집을 잡은 침략자 일본 위정의 최후 발악으로 폐간의 극형을 당하였던 동아일보는 이제 ‘이 날’을 기하여 부활의 광영을 피로하며 이 날을 기하야 주지의 요강을 다시금 선명하여 삼천만 형제와 더불어 동우(同憂) 동경(同慶)의 혈맹을 맺으려 하는 바이다.

창간 이래로 20여년간 압수 삭제의 난장(亂杖)은 천 번을 넘었으며 발행 정지의 악형이 사차에 이르러 만신이 피투성이였으나, 그러나 민족의 표현기관을 자임하였던 동아일보는 갖은 굴욕과 갖은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오히려 민족의 면목을 고수하기에 최후의 고절(苦節)을 다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붓을 들었다. 이 붓이 꺾일지언정 이 붓에 연결된 우리의 혈관에는 맥맥한 생혈이 그대로 격류를 지으리니 시(矢)는 바야흐로 현(弦)을 떠났다. 회의준순(懷疑浚巡)이 있을 수 없으며 좌충우돌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인도와 정의에 즉(則)하며 우리의 이 뜻이 검이 되기를 자기(自期)한다.

만천하의 동지여! 형제자매여! 우리의 염원을 바르다 하시고 우리의 단심을 예쁘다 하시어 절대한 성원을 늦추지 말아 광복의 홍업을 대성하여서 우리의 민족으로 하여금 미래영겁에 빛나게 하라.

단기는 4278년 12월 1일, 동아일보 동인일동은 삼가 이 일문을 초하여서 해방 홍업(鴻業)에 옥혈을 뿌린 재천의 영웅께 보고의 예를 갖추며 아울러 삼천만 동포의 심금에 격(檄)한다.”*

*동아일보 1945년 12월 1일자 1면 ‘중간사(重刊辭)’를 현대어 표기로 고쳐 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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