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55…잃어버린 계절(11)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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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패전, 온갖 명암에서 홀로 남겨진 듯 풍경은 한가롭기만 한데, 갑자기 두 사람은 8월의 하늘보다 더 넓은 부재를 느꼈다. 우근은 지금까지 잃어버린 것의 크기에 놀라고, 기와는 지금 잃어버리려는 것의 크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매앰, 매앰, 지 지 지 지, 쓰쿠쓰쿠 호-, 매앰 매앰….

“…아 참 그러고 보니…우근씨 돌잔치 때 노래를 불렀어요. 아버님이 한 곡 부탁한다고 해서…이제 살아서는 두 번 다시 우근씨를 만날 일이 없을 테니 작별 기념으로….”

저 산에서 우는 새는

짹짹 새인가 녹음인가

겐자부로의 선물 이것저것 받았네

비녀도 받았네

병풍 뒤에 놓아뒀더니

찍찍 쥐가 끌고갔네

한없이 한없이 끌고갔네

가마쿠라 거리 한가운데서

한잎 두잎 세잎 떨어지는 벚꽃

흑흑 버드나무 아래서 스님이

벌에 눈이 쏘여

아프다고도 가렵다고도 말 못하고

흑흑 울기만 할 뿐

기와는 공을 도랑에 빠뜨린 소녀처럼 두 손으로 주름과 반점투성이 얼굴을 덮고 울음을 터뜨렸다. 우근은 살며시 기와를 안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깨의 떨림이 가라앉은 듯하여 우근은 노파를 안은 채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한없는 파랑 속에 새털을 가늘게 채 썰어 띄운 듯한 구름이 정지해 있었다.

기와는 우근의 셔츠에서 풍기는 땀 냄새를 맡으면서 얼굴을 들어, 눈물이 번진 미소를 띠고 두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두 사람은 돌계단을 천천히 천천히 내려왔다. 8월의 햇살이 두 사람의 볼과 목덜미를 태웠지만, 그 혼까지 불사르지는 못했다. 바람이 불어,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새하얀 슬픔이 두 사람의 몸에서 빠져 나와 구름과 함께 파랑 속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돌계단을 다 내려온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자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잘 있어요.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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