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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2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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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노라 말하면, 당신은 늘 어어, 하고 고개만 끄덕였죠. 조산원 면허를 따고 싶다고 했을 때도, 이미 결정한 일이니 좋을 대로 하라는 말뿐이었습니다. 당신은 늘 나를 믿어줬어요, 나도 당신을 믿었고. 당신이 반도로 건너가자고 했을 때도 난 두말없이 따라 나섰잖아요. 서로의 결단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해야 할 일을 하고…우리 부부는 그렇게 44년을 살았어요.
“여보, 다녀오겠어요.” 기와는 불단에 뼈항아리를 올려놓고 두 손을 합장했다.
조선 사람에게서 받은 신발을 신고, 얇은 비단 잔무늬 옷자락을 여미고 나무문을 드르륵 열자, 8월의 햇살이 늙은 여인네의 멀건 눈을 찔렀다. 기와는 현관 우산꽂이에서 양산을 꺼내 펼쳤다. 큰길은 수레와 마차에 이불과 짐짝을 싣고 역으로 가는 남자들과 배낭을 메고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뒤따르는 여자들과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길모퉁이에서는 남자들이 멍석 위에 가재도구를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은 다 줄 테니, 부산까지 짐 좀 날라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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