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48…잃어버린 계절(4)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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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모리 기와는 어제 납골당에서 받아온 남편의 유골을 안고 툇마루에 반듯하게 앉아, 매미 울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앰…만세! 만세! 만세! 전쟁이 끝나고 닷새가 지났는데도 조선사람들은 얼굴만 마주치면 만세, 만세, 야단들입니다. 여보, 큰일났어요. 일본이 8월 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납골당이 있던 가곡동 신사를 조선사람들이 불태워버렸어요. 동사무소 사토씨가 조선사람에게 쫓기는 바람에, 일본사람들은 한데 모여 있는 게 좋다고 해서 다쓰지와 아키유키는 가메야 여관에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모두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어요.

난 그냥 여기 있을 거예요. 내일 오후에 차를 불러서 부산까지 짐을 실어 나르기로 했는데, 그때까지는 여기 있을 겁니다. 여기는 나하고 당신 집이잖아요. 기와는 긴 한숨을 몰아쉬면서 툇마루에 놓인 네 개의 고리짝을 바라보았다. 이것들만 가지고 갑니다, 여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오동나무 서랍장도, 예복도, 경대도, 모두 두고 가야 한답니다…다쓰지는, 관부연락선을 타려면 손에 들 수 있는 짐만 가져가야 하니까, 부산에서 여관에 묵으며 밀항선이 떠나기를 기다리자고 하는데…이 나이에 힘든 뱃길을 견딜 수 있을지…너무 오래 살았나 봅니다, 여보…일본이 이렇게 질 줄 알았더라면 대들보에 목을 매서라도 죽었을 겁니다. 뼈가 되어 당신하고 같이 돌아가는 편이 훨씬 편할 테니까…여보, 당신 내가 몇 살이나 된 줄 아세요? 지난 3월에 여든여덟 살 생일을 맞았습니다…여든여덟 살…당신하고 둘이서 시모노세키에서 사쓰마호를 탔을 때가, 그러니까 당신은 쉰아홉에 나는 쉰일곱이었으니, 벌써 30년 전 일입니다. 당신 한번도 고향에 돌아가 보지 못하고 먼저 가셨죠…나도 이 땅에 뼈를 묻으려 했는데…어쩌다 일이 이렇게….

8월 15일까지 나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들 하나에 손자 넷, 증손은 열여덟이나 보았고…3000이나 되는 아이를 이 손으로 받고…내지에서 받은 아이보다 여기서 받은 아이가 훨씬 많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지팡이 없이 두 발로 잘 걷고, 눈도 잘 보이고, 귀도 잘 들립니다. 지난달에는 성내까지 인력거를 타고 가서 쌍둥이를 받았습니다. 사내아이하고 여자아이하고, 산부는 조선사람이었어요.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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