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이승엽 “심심하면 인터넷 고스톱 쳐요”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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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기자
변영욱기자
이승엽(27·삼성 라이온즈·사진)을 만난 지난 8일은 그가 국정홍보처 라디오광고 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이 광고는 그가 온갖 어려움을 딛고 홈런 신기록을 만들어냈듯 국민들이 힘을 합쳐 어려운 경제를 살리자는 내용. ‘국민타자 이승엽’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국민’이란 이름이 붙은 대중스타는 3명 있다. ‘국민가수’ 조용필(53)과 ‘국민배우’ 안성기(51), 그리고 ‘국민타자’ 이승엽이다.

그는 ‘국민타자’라는 거창한 칭호를 어떻게 생각할까. “99년에는 부담스러웠어요. 당시엔 제가 한참 모자랐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듣기 좋아요.” 이제는 ‘다 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라디오녹음을 끝낸 뒤 이승엽이 자주 가는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았다. 요즘 인터뷰 세례에 시달리고 있는 이승엽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으나 한번 말문을 열자 금방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인터뷰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시즌 뒤에 더 바쁜 것 같은데….

“잠잘 시간도 별로 없다. 스케줄은 빡빡하고 사람들 만나고 언론도 많이 상대해야 하고…. 정말 힘들다. 항상 인상 안 쓰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나름대로 푸는 방법이 있나, 취미라든가.

“시즌 중엔 취미생활 즐길 시간이 없는데 가끔 게임을 한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건 못하고 인터넷 고스톱과 테트리스를 좋아한다. 고스톱은 사이버머니 3000만원으로 시작해서 지금 7억원이나 된다. 테트리스는 최고단계인 ‘신(神)’까지 올라갔다. 앞으론 취미생활로 골프를 하고 싶다. 골프채가 있어서 몇 번 연습장에서 쳐 봤는데 서 있는 공 맞추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필드는 아직 한번도 못 나가봤다.”

미국진출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그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팬들의 최고 관심사. 솔직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에이전트인 존 킴으로부터 가고 싶은 구단이 있다고 들었다. 희망구단의 조건은 어떤 게 있나.

“아직 FA(자유계약선수)가 되지 않아서 구단이름을 밝히긴 곤란하지만 몇 군데 있다. 일단 1루수가 약해서 내가 꾸준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이 첫째고 그 다음은 돈이다. 3∼4년 장기계약을 하고 싶고 액수는 연봉 기준으로 200만 달러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국내에 남을 생각은 전혀 없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여기선 더 이상 목표의식이 없다. 새로운 곳에서 야구인생을 펼치고 싶다.”

-일본인 타자 마쓰이 히데키의 올해 메이저리그 성적이 타율 0.287에 16홈런 106타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첫 해 치곤 잘 한 거 아니냐. 홈런이 적은데…. 일본에서의 타격폼과 변화는 거의 없지만 스윙폭이 약간 적어진 것 같다. 나도 그 정도 성적은 올릴 자신이 있다.”

-삼성 김응룡 감독과 박흥식 타격코치는 미국에 가면 홈런타자가 아닌 중장거리 스타일로 바꿔야 산다고 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일단은 체험해봐야 한다. 그래야 내게 필요한 게 뭔가 알지 않겠는가. 2년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경험으로 봤을 때 내 타격스타일을 바꾸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구를 잘 치기 위해선 현재의 950g짜리 방망이를 좀더 가벼운 900g 정도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영어실력은 어느 정도 인가.

“잘 못하지만 야구용어는 같기 때문에 용병들하고 간단한 대화는 다 한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배우고 싶다. 일본어는 영어실력보다 조금 낫다. 98년과 99년엔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비 시즌 때 독학으로 공부 좀 했다. 아내는 요즘 대구 집에서 개인과외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얘기를 하다가 화제가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병현과 김응룡 감독으로 넘어갔다. 그는 김병현의 ‘손가락 사건’에 대해 “운동선수끼리는 다 이해가 된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그래도 참아야 한다. 나도 야유 받고 오물세례 받은 적 많다. 2001년에는 대전구장에서 나한테 침 뱉은 관중도 있었고 올해는 잠실구장에서 경기 중에 LG팬들로부터 계란도 맞았다. 야구 잘 해서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코끼리’ 김응룡 감독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감독님과는 개인적으로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 따로 감독실에서 대화한 건 딱 두 번이라고 기억된다. 재작년 해외진출 자격이 됐을 때 ‘미국 가고 싶다’고 했더니 감독님은 ‘미국 가고 싶으면 준비를 잘 하라’고 충고해 주셨다. 일본의 마쓰이를 예로 들며 ‘마쓰이는 시즌 끝나면 시즌 때보다 더 많은 운동을 한다’면서…. 올해는 (임)창용이가 일본 진출로, 난 미국진출 문제로 신문에 기사가 많이 보도되자 우리 둘을 불러 ‘제발 기사 좀 안 나오게 하라’고 하시더라. 그 외에는 제대로 얘기를 못해봤다.”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친 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삼성 부임 후 3년간 이승엽에게 단 한번도 작전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승엽에게 “정말이냐?”고 묻자 그는 “한 경기에 번트 두 번 댄 적도 있다”며 씩 웃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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