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원정출산, 부러우십니까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7시 59분


최근 자녀의 미국시민권 취득과 군 입대 면제 혜택 등을 앞세워 원정출산을 알선했던 여행업체 관계자들과 산모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원정출산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미국에서 아기를 낳은 산모들의 3분의 2가 아들을 낳았다니 하늘의 섭리만은 아닐 터이기에, 뒷맛이 더욱 개운치 않다. 사전에 태아의 성감별을 한 뒤 아들임을 확인하고 ‘투자’를 결정한 이들도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원정출산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비난일색이다.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진 이유를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과 며느리의 원정출산 의혹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원정출산을 비난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런 비난에는 부러움과 시샘의 눈길도 섞여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능력과 기회만 되면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원정출산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원정출산을 한 산모들의 반발과 변명도 만만치 않다. ‘미국 가서 아이를 낳는 것이 불법이냐’, ‘이중국적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애국행위다’ 등등.

왜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가며 미국에서 아기를 낳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원정출산을 알선하는 한 여행업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미국) 시민권의 장점’이란 제목 아래 국내의 열악한 교육환경, 세계화 추세, 미국에서의 저렴한 교육 기회, 안정된 사회보장제도 등 4가지를 주요 이유로 꼽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여행사측은 자녀가 미국시민이 되면 나중에 부모를 초청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부모도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될 수 있다는 유혹적인 설명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에서 생활해 본 많은 이들은 “미국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원정출산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유학 중 세 아이를 낳은 A씨의 말. “시민권은 또 다른 인생의 출발점은 될 수 있으나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시민권자는 공립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고 일부 주립대학의 수업료를 할인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부모가 히스패닉이 몰려 사는 슬럼가의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겠는가. 백인 부유층 거주지역의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려면 상상할 수 없는 돈과 뒷바라지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영어 관련 사업을 하는 A씨는 국적 선택은 아이들에게 맡기겠지만 미 국적을 권유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학한 B교수의 경험담. “유학시절 수영을 하기 위해 학교 수영장에 뛰어들었는데 수영장에 있던 백인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모두 밖으로 나가더라.” 어렵고 힘든 결정을 거쳐 자녀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어도 인종차별이 엄연한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하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고언이다. 그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그 순간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미국 시민권의 가장 큰 혜택이랄 수 있는 병역면제에도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미국사회에 영원히 정착할 것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병역 미필’은 영원한 족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나 아들의 병역문제로 좌절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라.

마침내 자녀들이 국적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감사의 마음 대신 부모에게 이렇게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 나는 누구인가요?”라고.

장성희 사회2부 차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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