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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3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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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작가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弘美·45)의 소설은 마치 불완전하게 이어지는 꿈 같다. 창작집 ‘뱀을 밟다’에 수록된 3편의 소설에는 ‘꿈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쓰지 않는 몽환적 세계’가 담겨있다.
현실도 환상도 아닌, ‘어디도 아닌 곳’에서 생물과 정령이 공존한다. 경계가 허물어진 가와카미의 세상에서는 기괴함이란 일상에 내재된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거듭되는 이상한 사건에 결코 놀라지 않는다.
표제작에서 주인공 히와코는 뱀을 밟는다. 쉰 살가량 된 인간 여자로 변한 뱀은 자신이 엄마라고 주장하며 히와코의 집에 눌러 앉고는 ‘뱀의 세계’로 오라고 유혹한다. 뱀과 친밀해진 히와코는 일견 ‘뱀의 세계’를 동경한다. 그러나 히와코는 이성적으로 그 곳의 존재를 의심하고 뱀과 싸움을 벌인다.
‘뱀의 세계 같은 데는 가고 싶지 않다. 아무리 가고 싶지 않다고 거절해도 뱀은 자꾸만 찾아와서 가자고 한다. 그러다가 슬쩍 바뀌어 뱀의 세계로 가고 싶어져버리게 될까?’
이 소설로 작가는 1996년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닌 근원적 심층 심리 드라마와 잇닿아 있으며…현대 젊은 여성들이 지닌 ‘심층의식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하나의 극적 세계를 문장으로 표현해냈다”고 밝혔다.
표제작은 ‘가와카미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꼽히며 ‘사라지다’는 이 작가의 작품이 일본 민담 및 설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두 작품보다 앞서 발표한 ‘어느 날 밤 이야기’는 전통적인 소설 서사를 훌쩍 넘어선다. 가와카미의 소설에서 현실과 허구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연속해 굴러가며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거짓말’의 나라는 ‘정말’의 나라 바로 옆에 있고, 군데군데 ‘정말’의 나라와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거짓말’의 나라는 들어가는 문이 좁지만, 속은 뜻밖에 깊고 넓지요.”(‘지은이의 말’)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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