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나이지리아 여인

  • 입력 2003년 9월 26일 18시 00분


코멘트
이혼녀 신분으로 딸아이를 낳은 죄목으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지난해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돌로 쳐 죽이라’는 선고를 받은 한 가련한 나이지리아 여인(32)이 3심에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뉴스가 지구촌의 화제다. 여인은 2심에서 “딸이 두 살이 될 때까지 사형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을 받은 이후 전 세계 인권 및 여성단체의 동정과 지원을 받게 됐다.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북부 12개 주에선 1999년 군사독재정권이 붕괴된 후 지방자치가 확산되면서 40년간 금지된 이슬람 율법이 부활됐다.

▷간통 상대방으로 지목된 남성은 사건 초기에 “혐의를 입증할 증인 4명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처분을 받았다니 여인은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미혼이나 독신여성이 임신할 경우 무조건 돌로 쳐 죽이도록 돼 있는 이슬람 율법에는 남성의 경우 간통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4명의 증언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인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고국에서 딸과 함께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봉건사회에서 돌과 주먹은 언제나 법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간음하던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와 “모세 율법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돌로 쳐야 한다고 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오리까”라고 물으면서 예수를 시험한다. 예수가 묵묵히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며 즉답을 피하자 그들은 거듭 답을 재촉한다. 그러자 예수는 천천히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양심의 가책을 느낀 율법주의자들은 하나 둘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현장에는 오직 예수와 간통한 여자만 남게 된다. 예수는 여인을 정죄(定罪)하지 않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며 돌려보낸다.

▷오늘날 한국에서 다시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초등학교 주변까지 러브호텔이 진출해 있고 남편과 아내는 물론 시어머니와 고등학생까지 불륜에 탐닉해 있는 ‘바람난 가족’까지 등장한 마당에 누가 ‘감히’ 간통하는 여인을 끌고 올 것이며, 어느 정신 나간 여자가 간통현장에서 순순히 잡혀 오겠는가.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 남이 하는 것은 불륜’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지도 오래다. 슬금슬금 현장을 떠난 유대인들이 그래도 양심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한국의 러브호텔 주변에 돌을 쌓아 두도록 한다면 전국의 돌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