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25…낙원에서(3)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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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 같은 게 어떻게….” 담배 연기가 목에 걸려 나미코는 컹컹 기침을 했다.

빨리 끝내! 다들 기다린다고!

방마다 길게 늘어선 자들이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돼지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전쟁은…?” 나미코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대륙을 타도하겠다는 목표는 완수했지만, 그래도 미 공군 B29기지는 섬멸하지 못했고, 중경군도 격파하지 못했으니, 적군의 습격을 경계하느라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선로 하나 멀쩡한 게 없고, 탈선한 기관차는 나뒹굴어 시뻘겋게 녹슬고 있고…. 얼마나 행군을 했는지…. 250리는 족히 될 거야, 250리면 도쿄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거리야.

첫날 아침에는 척 척, 군화소리에 맞춰서 노래까지 부르면서 출발하지만, 길이 울퉁불퉁한 돌투성이에다 잡초까지 무성하다 보니까, 낮에는 발바닥하고 복사뼈가 아파서 바늘산을 걷는 것 같아. 잠시 쉬다 보면 군장이 무거워서 누가 손을 잡아당겨 줘야지, 안 그러면 일어설 수도 없고. 엉거주춤하고 겨우 발을 내디디기는 하는데, 우리 부대는 행군에 익숙하지도 않고 체력도 없는 보충병이 대부분이니까, 한 걸음 두 걸음 뒤처지다가 앞부대가 안 보이면 또 그 차를 줄이려고 정신없이 행군하는데, 말은 난동을 부리면서 걷어차지, 짐은 떨어지지, 약삭빠르게 수송차에 매달려 가던 보충병은 차에 깔리지, 다른 부대들이 우리를 점점 앞질러 갔어. 보충병은 계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니까 군기도 엉망이고. 딱 보기만 해도 한눈에 현역병과 구별이 될 정도니.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전투모를 얼굴에 푹 뒤집어쓰질 않나, 뜨거운 반함 뚜껑을 잡지를 않나, 그래서 늘 전투모가 시커멓다니까.

제일 꼴찌가 되면 해가 저물든 날이 밝든, 해가 중천에 뜨든 밥도 못 얻어먹고 쉬지도 못하고 행군을 계속해야 돼. 간신히 뒤쫓아가 언덕 위에서 한숨 돌리면서 내려다보면, 선두 대열이 저 멀리 초원에서 개미떼처럼 전진하고 있는 거야.

비 내리는데 행군하면 더 비참하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에서 다리가 안 빠져서 쓰러지고, 총도 안경도 진흙탕 범벅. 수송차 바퀴까지 진흙탕에 빠져서, 짐을 메고 산언덕을 오르기도 했어.”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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