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17…1944년 3월 3일(5)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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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다, 동아여관 그 여자는 재혼해서 아들 낳았는데 자궁에 병이 생겨서, 아편 피운다더라.”

“아이고, 아편에 손댔다 카믄 지 목숨 갉아먹는 기라.”

“수족도 못 쓰고, 하루 종일 누워 있다더라.”

“우철이 에미는 이 고장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집 출신이니까네, 그 아버지 용하가 자손들한테 재앙을 가지고 온 기라.”

“떠돌이 관상쟁이니까네.”

“그래도 우근이는 미남에다 달리기도 잘하고, 초량상고에 다니는 배운 사람이다. 형하고도 달라서 여자한테는 별 관심 없는 것 같고, 순진하다.”

“무슨 소리고, 인자 겨우 열여덟인데.”

“아이고, 우철이가 인혜하고 혼례 치른 게 언젠지 아나, 열여섯 때다.”

“우리 사위로 삼았으면 좋겠는데.”

“자네만 그래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네.”

“한데, 내년이면 스무 살이라, 끌리 가겠제.”

“그때까지 전쟁이 계속될라나.”

“파죽지세라 안 카더나. 어제 애국반 모임에서 야스다 반장이, 영국 인도군 주력부대인 제7사단을 거의 전멸시켰다 안 카더나.”

“미국하고 영국한테 이긴다 말이가.”

“…어디 지겠나.”

“이길 때까지는 마, 어쩔 수 없제.”

“사치는 적이다.”

“우리 막내딸은 정신대에 지원해서, 미쓰비시 중공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월급봉투에 전철 삯밖에 안 들어 있단다. 그래서 매달 거꾸로 돈을 보낸다 아이가. 그 봉투에는 우리는 천황 폐하를 위해서 살고, 우리는 천황 폐하를 위해서 일하고, 우리는 천황 폐하를 위해서 죽는다고 써 있다. 그러니 일본이 이긴다고 조선 사람 형편이 나아지겠나. 천황하고 왜놈이나 좋아라 하겠제. 천황을 그냥 B29로 칵….”

후욱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나고, 생각을 고쳐먹기라도 했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밀양아리랑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가락에 맞춰 산비둘기가 구구거리고, 미나리를 뜯는 여자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한 여자가 자기 손길에 힘을 북돋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일본이 이기면, 흰 쌀밥 먹게 될 끼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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