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김재상/加 인디언 “한글이 부러워요”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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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상
나는 캐나다 교포로 11년째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애보츠포드 한국어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우리 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40여명과 함께 한 인디언 문화센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깊은 산속 계곡을 끼고 위치한 문화센터는 원래 백인들이 지은 교회를 인디언에게 인계한 것이라는데 건물 외관이 아주 멋있었다. 인근 계곡에는 늦가을이면 수많은 연어가 돌아와 알을 낳는데, 이때만 되면 알을 낳고 죽은 암컷들이 즐비하다는 안내도 들었다. 이 계곡에서 태어나 먼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모천(母川)에 회귀하는 연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새삼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내 처지가 서글퍼졌다. 나도 저 연어들처럼 고국에 돌아가 일생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날 저녁을 먹은 뒤 들은 문화센터 인디언 책임자의 환영 연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태어났건 엄청난 행운아다. 고국에 대해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국어인 한글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했는데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를 보고 무척 놀랐다. 인디언은 읽고 쓸 수 있는 문자가 없어 민족의 영속성이 사라지고 있다. 말로만 이어지고 있는데, 그 말조차도 점차 영어로 대치되고 있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 나라의 말이 없으면 그 민족의 정체성도 없어진다. 따라서 여러분은 모국어를 꼭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대손손 이어져야 한다. 결코 우리 인디언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환영사가 계속되는 동안 청중은 감동어린 표정을 지은 채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인디언의 말은 처음엔 힘이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죽어가는 연어처럼 힘이 없었다. 나만 느꼈는지 모르지만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유난히 슬퍼 보였다. 나는 그때처럼 교포 2세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내 생애 마지막 날까지 이 교육사업에 몸을 바쳐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김재상 캐나다 애보츠포드 한국어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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