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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2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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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 있으면서도 감각적이고 또한 창조적인 한 중심점이다. 우리 안에서 창조하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유일한 세계 그 자신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이 세계의 중심이며 이 세계 그 자체임을 만천하에 밝히는 선언이다. 이런 확신에 찬 선언으로 이 책의 첫 장을 시작하는 저자 피에르 레비는 절대자의 계시를 받은 사제도 아니고 깨달음을 얻은 수도승도 아니다.
캐나다 퀘벡대 사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레비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문화적, 인식론적 영향과 사회적 활용을 연구하는 이 시대 최첨단의 사회학자 겸 철학자다. 그리고 그의 저서 중 여섯 번째로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됨으로써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를 다투는 한국 사회에서 그의 주요 저서는 거의 모두 번역된 셈이다.
그의 주장을 집약하는 키워드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다. 인류는 인쇄 통신 운송 등의 기술을 이용해 자신들의 지적 능력과 지적 자산을 소통시키면서 ‘집단적 지성’을 이루며 발전해 왔고, 최근 사이버 공간의 발달로 이 집단지성은 시공간의 제한을 빠른 속도로 극복하면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집단지성이 사회와 국가의 온갖 장벽들을 무너뜨리고 인류를 통합해 가는 과정을 매우 희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집단지성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시공간의 벽에 갇혀 있던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소통되면서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결국 우주와 개인이 하나가 되는 최종 진화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세계철학(World Philosophie)’이지만 옮긴이들은 저자가 가톨릭 신부 겸 고고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에게서 빌려온 개념인 ‘누스페어(noosph`ere)’를 한국어판 제목으로 삼았다. noo(정신)와 sphere(시공간)의 결합어인 누스페어란 집단지성이 사이버공간에서 형성하는 세계로, 레비가 이 책에서 그리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이버공간을 통해 개개인의 정신을 연결시키는 누스페어는 우주 전체가 되고,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이 된다. 사뭇 종교적이기까지 한 레비의 선언이 허황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의 주장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 교육, 자유의지 등을 통해 정신의 문을 사방으로 열고 인류가 꿈꿔 온 온갖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한다. 그것은 컴퓨터나 전산망과 같은 물리적 도구일 수도 있고 시장경제와 같은 경제조직일 수도 있다. 또한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체제일 수도 있고 인문주의적 계발을 위한 교육제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도구를 개발하고 이용하면서 인류는 ‘정신적 빅뱅’을 진행하며 자신을 우주로 확장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우주와 자신이 동일시되는 미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구성하는 거대한 사이버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은 가톨릭 신부인 샤르댕의 영적 세계, 그리고 유대계 프랑스인인 레비가 최근 관심을 갖게 된 불교의 세계와 만나 더욱 풍성해졌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 사이의 긴장 속에서 풍성해진 그의 사유는 점차 종교 심성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기뻐할 일일지, 안타까워할 일일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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