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86…낙원으로 (3)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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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면 너하고는 끝이라고…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기에… 젖을 문 채로 잠든 아들을 안방에다 눕히고, 그 사람 앞에 앉았지. 끝이라니, 무슨 뜻이냐고… 그 사람은 얘기하고, 나는 듣기만 했어. 듣는 것만 해도 벅차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어.

광복 전쟁에 대비해서 동지들과 행동을 같이한다. 우리가 같이 있으면 너하고 아이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 사람 목소리가 열기를 띠고 있었지만, 술에 취했을 때처럼 열에 들뜬 것은 아니고, 똑바로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그래서 나도, 이거 큰일 났다 싶어서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어.

왜놈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오래전부터 생각해봤다… 너하고 부부가 되기 훨씬 전부터다… 우연히 어떤 분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 말씀이 옳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몇 번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옳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너한테는 말 안했지만, 3년 전부터 미력하나마 그분과 이념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도왔다… 그분의 이름은 처인 너한테도 밝힐 수가 없다. 아니, 처이기 때문에 더욱이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작년 시월에 네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서… 나도 한참을 고민했다… 아버지가 되는데, 위험한 일은 피해야 하지 않는가 싶어서… 그러나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욱이 치욕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졌다. 옳다고 여기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치욕에 어떻게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밟을 수 있겠는가. 그런 남자가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나는 해가 바뀌면 집을 나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말할 수 없고… 내가 집을 떠나면, 내가 죽었다 여기는 곡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다른 누구의 피가 아니라 먼저 내 피로 이 산하를 물들이려는 뜻이 불처럼 번져나가지 않으면 혁명은 일으킬 수 없다. 나라는 망했지만, 민족은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내 몸에서 흐르는 조선 민족의 피가 하늘을 찌를 듯 용솟음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내 집은 대한민국이다… 32년 전에 왜적에 빼앗긴 대한… 나는 삼천리금수강산과 2000만 동포에게만 충성을 다할 것이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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