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87…낙원으로(4)

  • 입력 2003년 8월 7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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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얘기가 다 끝난 다음에도 나, 아무 말 못했어…하고 싶은데 못하는 게 아니라…그 사람의 옳음을 거역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섣달 그믐날 밤, 귀신이 못 찾게 그 사람하고 내 신발은 감췄지만, 해지킴은 하지 않았어…다른 집 사람들은 온 집안에 호롱불을 켜놓고 밤을 새우는데, 우리 부부는 호롱불을 다 끄고 캄캄한 안방에서 아들을 사이에 끼고 누웠지…마지막 밤…나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인가 해주기를 기다렸고, 그 사람도 몸 하나 뒤척이지 않고 숨까지 죽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하지만…아무 말도…한 마디도…우리, 첫닭이 울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어.

설날 아침, 나는 아들을 안고 살짝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먹이고, 떡과 쇠고기로 떡국을 끓이고, 생강과 계피물을 우려 말린 감을 띄워 수정과를 만들었지. 내가 설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 사람은 대문 기둥에 한 해의 무사함을 빌기 위해 복숭아나무 가지를 꽂고, 한지에 <입춘대길>이라 써서 대문에 붙였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 많이 받게 하고 새해 인사를 나누고, 도소주(屠蘇酒)를 마시고, 그 사람은 생선전을 맛있게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어. 그 순간 쌔근쌔근 자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혼이 빠질 정도로 우는 거야. 내가 엉덩이를 들기 전에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어…그랬더니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치는 거야…아기는 말이지…한 달 사이에 얼마나 쑥쑥 크는지 몰라…한 달 전에는 목도 서지 않았는데, 엎어놓으면 두 손을 쭉 뻗고는 고개를 들려고 하질 않나, 이름을 부르면 손발을 다 버둥거리고 웃고….

그 사람, 아이의 겨드랑이에 두 손으로 받치고 눈높이로 들어올리면서, 용학아, 하고 자기가 지어준 이름을 불렀어. 아기는 아버지 입에다 손을 집어넣고는, 아아, 우우, 아아아아 하고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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