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88…낙원으로(5)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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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안은 그 사람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가슴속에다 그 아이를 간직하려는 듯 꼭 껴안고…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왜적에게서 이 나라를 되찾아…그때도 내 목숨이 붙어 있거든…우리 식구 셋이서…바람 잔 다음의 풀처럼…줄기 뿌리 뒤엉켜 살아가자고….”

소녀는 객실 벽에 기대어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메스꺼움도 두통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달빛에 마음이 조금씩 맑아지고 하얘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사람이 떠난 후…난 아이를 업고 일하러 다녔어, 바느질도 하고 식모 노릇도 하고…하지만 일거리는 적고…배급만 기다렸다가는 굶어죽겠고…젖이 나오는 동안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젖도 안 나오고…개비자나무라고, 닭고기하고 비슷한 맛이 나는 잎을 따서 죽을 끓이기도 하고, 일본 사람이 하는 양조장에서 술지게미를 얻어다 끓여서 배급받은 설탕을 조금 넣고 휘저어서 먹이기도 하고, 작년에 주워두었던 도토리를 빻아 감자하고 섞어서 떡처럼 만들어 먹이기도 하고, 억새 싹을 캐서 삶아 먹이기도 했지만, 그 아이 얼굴에 황달기가 있어서, 침쟁이한테 가 보였더니 영양실조라고…어디 일거리 좀 없겠느냐고 반장한테 울면서 매달렸더니, 군복공장 얘기를 해줬어…스무 살 미만의 미혼 여성이 조건이지만…자네 같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아이하고 헤어지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다달이 돈을 보내면서 저금을 해서 한 1백엔 정도 모이면 돌아와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잖아.

돌잔치를 치르고 사흘 후에 집을 나섰어. 기뻐할 자리에 눈물이 끝없이 흘렀지…그 아이, 영양실조라는데도 아버지를 닮아서 덩치는 얼마나 큰지…키도 이 정도나 되고…조그맣고 새하얀 이도 두 개나 나고, 아직 기어다니는 편이 빠르지만, 벽에다 손을 대고 걷기도 하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셀 동안은 두 팔을 앞으로 쑥 내밀고 설 줄도 알아…엄마 소리도 할 줄 알고, 두 주일 전에는 빠빠, 멍멍 소리도 했는데, 집 나온 지 벌써 엿새나 됐으니까 그 사이에 다른 말도 배웠을 거야…그 아이, 내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온 집안을 찾아다니는데. 그래서 뒷간에 갈 때도 금방 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을 하고 가야지 안 그러면….”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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