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80…아메 아메 후레 후레(56)

  • 입력 2003년 7월 30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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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빈자리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쌀죽, 녹두죽, 찐만두, 군만두, 고기만두, 완탕, 호떡, 오이절임, 셴빙(함餠·소를 넣어 굽거나 튀긴 밀가루 떡), 피단두부(오리알과 두부 요리), 용무늬가 그려져 있는 도기 주전자에는 중국차, 아주 맛있을 것 같다, 먹어보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까 먹어두는 편이 좋을 텐데, 하지만 씹고 삼키기가 성가시다. 소녀는 헤엄치다 지친 팔을 들어올려 도기 숟가락을 잡고 쌀죽을 떠먹었다.

연푸른 하늘에는 잔물결 같은 구름이 한없다. 앗, 호랑이 줄무늬 같은 구름이다,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구름도 있고, 바람이 구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기 저 구름은 솔로 쓱 그린 것 같고, 저 구름은 뒤엉킨 실타래 같고, 저건 골무 같고, 바로 옆에 실 부스러기하고 헝겊 조각도 있으니까, 나 같으면 ‘반짇고리’라고 이름 붙일 텐데.

“하하하하, 이 아가씨는 정말 호기심이 왕성하군. 하늘까지 열심히 관찰하고 있으니 말이야.” 남자는 사냥모를 벗고, 얼굴 한가득 햇빛을 받으면서 기지개를 켰다.

“하늘하고 구름이 너무 예뻐서….”

“허, 저렇게 구름이 높아졌으니 여름도 다 갔군.”

“오늘이 며칠이죠?”

“9월 1일이지.”

“벌써 9월이에요?”

“그럼.”

오늘부터 2학기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소녀는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올려다보는 듯한 눈길로 시전(市電) 정거장에 쓰여 있는 글자를 읽었다.

‘시나노마치 다음은 니혼바시.’

정거장에는 세로로 수피가 벗겨진 아카시아가 그 옆에 서 있는 포플러와 가지를 뒤섞고, 바람이 불 때마다 비에 씻긴 매끈한 잎사귀를 사락사락 부딪치면서 수은 방울 같은 빗방울을 후드득 후드득 떨어뜨렸다. 그 빗방울이 몇 방울 소녀의 정수리 언저리에 명중했다. 나뭇가지가 똑바로 하늘로 뻗어 있는 저 나무는 포플러야, 어디에 있든 못 알아볼 리 없지, 밀양강 강둑에도 있는 걸, 아침저녁으로 강둑을 달리는 그 사람을 응원해 주는 포플러…지금도 뛰고 있겠지…큐우, 파아, 큐우, 파아, 소녀는 두 팔을 날개처럼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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