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내 자식 내 맘대로?

입력 2003-07-23 18:51수정 2009-10-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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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는 늘 냉정해야 하지만 드물게는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바로 어린이들이 관련된 사건 사고이다. 99년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씨랜드 어린이 화재 참사,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주부가 세 자녀를 밀어뜨린 뒤 투신한 사건 등이 그렇다.

아직 어리지만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하고 “엄마가 우릴 죽이려 한다”고 울부짖었다는 초등학교 1년생 맏딸의 모습이 떠올라 며칠째 잠을 설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북 포항시에서 “살림을 잘 못한다”며 시어머니와 자신을 늘 비교하고 질책하는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던 주부가 1, 3세 두 아들을 질식시켜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자살했다.

며칠 전 광주에서는 아버지의 학대 때문에 아동학대예방센터에 맡겨졌던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겠다”는 센터 직원의 말을 듣고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이를 잘 키워 보려 그랬다”며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때로는 저승길에 동반하는 이런 끔찍한 현상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한국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자살을 택하면서 아이들을 함께 죽일 때의 심정은 “부모 없이 자라게 하느니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낫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데는 극심한 경쟁구조 속에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적지 않지만 저변에는 “내 자식은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부모의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 현상은 교육 현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자식의 점수가 엄마의 점수’이다. 자식이 대학에 떨어지면 부모가 죄인이나 된 듯 고개를 못 든다.

부모의 입김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고르는 일도 여전하다. 오죽하면 결혼을 둘러싼 자녀와 부모의 갈등이 21세기에도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될까.

최근 ‘촛불시위’를 비롯한 각종 시위현장에 어린 자녀를 동반하고 참여하는 모습도 자못 충격적이다. 이는 아이를 민주사회의 바른 구성원으로 양육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아직 판단력이 성숙되지 못한 나이에 예민한 사안에 대해 부모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힘겨운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부모의 삶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을 수는 없다. 육신은 부모가 주었지만 삶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현대의 성서라고 불리는 산문시집 ‘예언자’의 저자 칼릴 지브란의 시는 요즘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아이들에 대하여’ 중에서)

정성희 사회2부 차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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