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대지의 아이들…'빙하시대 원시소녀의 삶과 투쟁

  • 입력 2003년 7월 18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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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아우얼의 깊이 있는 연구와 독창적인 상상력은 ‘선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사진제공 한양대학교 박물관
진 아우얼의 깊이 있는 연구와 독창적인 상상력은 ‘선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사진제공 한양대학교 박물관
◇대지의 아이들-사냥하는 여자, 에일라(전 2권)/진 M 아우얼 지음 김은영 옮김/각권 454쪽 각권 1만원 현대문화센타

끼니를 걱정하던 극빈의 이혼녀가 아기 우유 값이라도 벌겠다고 처음 써 내려간 동화책이 지구촌에서 손꼽히는 부자를 탄생시킨 현대의 신화를 우리는 유쾌하게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 뒤늦게 번역 소개된 신간 소설을 읽다보니 ‘해리 포터’의 조앤 롤링을 방불케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또 있었다.

선사(先史)소설이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시리즈물 ‘대지의 아이들’의 저자 진 아우얼. 1980년 첫 권이 나와 지금껏 전 세계적으로 40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시리즈 세 번째 권은 초판 100만부를 찍어낸 최초의 책으로 기록됐다는 초대형 화제작의 저자 이력이 흥미롭다.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18세에 결혼하여 25세에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전자장비 공장에서 일하며 ‘회로판을 설계하고 싶다면’이라는 팸플릿을 쓴 게 유일한 작품이었던 저자에게서 세계적인 작가의 모습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술회하는 그가 마흔 살 넘어 공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매달린 일이 구식 타이프라이터 앞에서 하루 16시간씩 쓰고 또 쓰는 일. 그렇듯 무모하게 탄생한 소녀 에일라의 이야기가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고 저자는 스미소니언에서 강연하는 저명인사가 된 것이다.

현재 5부작까지 나온 ‘대지의 아이들’ 시리즈 가운데 이번에 출간된 것은 첫 권 ‘사냥하는 여자, 에일라’편. 대략 3만5000년 전쯤의 빙하시대, 구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그때의 신인류인 크로마뇽인의 병존기 동굴 생활사를 배경으로 한다.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버려진 다섯살배기 소녀 에일라. 굶주림과 동굴사자의 습격으로 사경을 헤매던 그를 구출해 준 건 새로운 거처를 찾아 방랑하던 낯선 씨족집단(동굴곰족)의 약어미(일종의 원시 의사) 이자였다. 네안데르탈인이 진화 계통상 앞선 크로마뇽인의 아이를 받아들여 문화충격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이어 장장 1000쪽에 걸쳐 꼼꼼한 고고인류학적 검증을 바탕으로 선사의 생활 모습과 그 속에서 억압과 질서를 상징하는 동굴곰족의 관습에 대항하는 에일라의 수난기가 펼쳐진다.

현생인류와 닮아있는 에일라의 생김새가 동굴곰족에게는 끔찍하게 ‘못생긴’ 것으로 간주되며, 노예적인 순종만을 강요당하는 당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에일라는 남자만의 성역이던 사냥술을 목숨 걸고 익혀 맞선다. 그는 한 동질집단 내의 타자가 어떻게 소외와 배척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냥 호흡이 짧아진 우리 독서계에 이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아울러 지나치게 문명화된 원시인의 자의식을 어떻게 납득할지도. 저자의 강력한 주장처럼 초기 인류와 현대인의 ‘지능과 감정과 신체적 특성이 똑같은 것’인지 공감하려면 독자에게 상당한 정도의 상상력이 요구될 것이다. 휴가철 집중 독서물로 유감없이 추천한다.

김갑수 시인·문학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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