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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7월 7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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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사익이 부닥칠 때, 조정자가 되는 것은 도덕심이다. 아쉽게도 이번 일에서 김씨의 도덕심은 그의 욕심을 누를 만큼 힘차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화려한 이력에 씻기 어려운 오점이 찍혔다.
▼모두 잘못없다 항변하지만…▼
김씨가 부위원장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해 달라는 유치단의 요청을 끝내 외면하고 사익을 추구한 주요 원인은 평창이 개최지로 뽑힐 전망이 밝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평창의 전망은 어두웠다. 그러나 그런 사정이 유치단이나 김씨의 노력을 덜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창이 얻은 표들은 모두 알찬 성취고 앞날의 자본이 될 터였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탐욕으로 흐려졌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워 성공적 이력에 큰 흠을 낸 사람들을 요즘 우리는 자주 본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특별검사의 조사는 그가 국익보다는 사익을 앞세웠음을 보여 주었다.
북한과의 교섭엔 무척 큰 개인적 공적 위험들이 따른다. 게다가 김 전 대통령의 경우엔 사익과 공익이 부닥칠 가능성이 특히 컸다. 남북 정상회담은 그에게 큰 정치적 자산과 국제적 명예를 줄 터였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지 않는 남북한의 화해 몸짓은 한국의 안보를 해칠 터였다.
그렇게 미묘한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을 인도할 만한 것은 그의 도덕심이었다. 정상회담이 아무리 매혹적이었다 해도, 그의 도덕심이 제대로 움직였다면, 정상회담은 우리 국익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김 전 대통령의 밀사였던 박지원씨는 북한에 인도적 원조와 사회간접자본 지원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현금 지원을 고집했다. 북한처럼 압제적인 정권이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지원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궁극적으로는 정권을 돕는다. 인도적 원조도 그러하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처지가 워낙 어려우므로, 누구도 인도적 원조에 인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을 직접 늘리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사회간접자본의 지원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현금 지원은 전혀 다르다. 북한 정권을 직접 돕고, 무엇보다 북한군의 군비 증강에 쓰이므로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해로운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실제로 정상회담 대가가 송금된 뒤 북한은 여러 나라에서 신형 무기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장비들을 사들였다.
김 전 대통령은 현금 지원이 안고 있는 문제와 위험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탐욕으로 흐려졌고, 그는 끝내 불행한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적지 않은 국민은 김 전 대통령을 사익을 앞세워 나라의 안보를 약화시킨 정치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다.
도덕심은 진화의 산물이다. 그것은 개인들의 생존에 쓸모가 있으므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만일 도덕심이 개인들의 생존에 해롭다면, 깊은 도덕심을 지닌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졌을 터이고, 자연히 도덕심은 자연 선택을 통해 사라졌을 것이다.
▼도덕심 흐려지면 판단 흐려져 ▼
도덕심의 기능은 심적 경고 장치다. 어떤 사람이 규범에 어긋난 짓을 하면, 도덕심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양심의 가책’이란 표현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난다. 그런 뜻에서, 도덕심은 우리 육신의 아픔과 비슷하다. 통각(痛覺)을 잃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위험에 노출되듯이, 도덕심이 약하거나 그 경고를 외면하는 사람들은 파멸에 이르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도덕심이 판단력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탐욕이 판단력을 흐리는 경우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특히 책임과 권한이 큰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음미할 만한 화두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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