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화영 교수(고려대)가 가려 뽑은 ‘여름의 광채로 빛나는 41편의 시’를 만나보자. 푸른 시편들과 함께 휘파람 소리 같은 경쾌한 단상이 빛을 발한다.
‘맑은 하늘 한복판/새소리의 무늬도 놓쳐버리고/한 처녀를 사랑할 힘도 잃어버리고/네댓 살짜리 아기의/발 뻗는 투정으로 울고 싶은 나를/천만 뜻밖에도 무기징역(無期懲役)을 때려/이만치 떼어놓고/환장할 듯 환장할 듯/햇빛이 흐르나니/바람이 흐르나니.’
박재삼의 시 ‘맑은 하늘 한복판’을 읽으며 저자는 ‘평상에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의 하안거(夏安居), 그 한순간’을 본다. 새도 사랑도 아무 것도 없는 세상, 다만 존재하는 것은 맑은 하늘과 햇빛, 그리고 바람 뿐. ‘없음’은 더없이 아름답고 세계는 나의 ‘밖’에 있다.
편자는 ‘삶의 비어있는 중심을 향해 곧장 달려가서 여름의 벼락 치는 시인이 되어보자’(자서)고 손을 내민다. 오규원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김종해의 ‘섬 하나’, 김명인의 ‘바다의 아코디언’, 이성복의 ‘귀향’, 이문재의 ‘황혼병3’ 등이 여름의 공간을 가로지른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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