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성동기/한나라당, 막말 비난하더니…

  • 입력 2003년 6월 5일 18시 29분


코멘트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26일)가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당권주자 6명 모두가 너도나도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막말 다툼’도 치열하다. 본격적인 선거전으로 접어들수록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유력한 당권주자 중 한 명인 최병렬(崔秉烈) 의원은 5일 출마선언 기자회견 자리에서 “상대방이 원칙을 짓밟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며 “나도 짓밟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 후보의 부인이 최근 당 선관위가 금지했는데도 잇따라 지구당사를 방문해 향응을 제공한 데 대해 당 선관위는 원칙대로 대응하라는 취지였지만 표현이 지나쳤다는 게 당내의 평가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대표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도전하는 서청원(徐淸源) 의원은 얼마 전 당 선관위원인 김문수(金文洙) 의원이 불공정 경선사례를 지적하자 김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를 죽이려고 그러느냐”며 폭언을 퍼부었다. 그는 또 4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후보간 연대도 가능하다”는 타 후보들의 주장에 대해 “당의 권력을 나눠먹는 합종연횡은 과거에나 있던 일로, 당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당권주자들은 이 밖에도 “국무총리나 해먹자는 정신 나간 생각” “대선 패배 공동책임을 회피하고 대표 출마를 위해 먼저 살짝 나온 기회주의자보다 온몸을 던져 일하고 솔직히 잘못을 인정한 내가 낫다” “○○○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되면 당 분열의 단초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인사들이 다수 있다” 등 상대방 흠집 내기를 계속하고 있다. 일부 후보들은 공개토론회 등에서 상대 후보의 전력을 들춰내며 당과 개인의 이미지를 훼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 안팎에서는 깨끗한 경쟁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자탄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장관들의 각종 발언에 대해 ‘막말’이니 ‘비속어’니 하며 맹비난해온 우리 당의 대표주자들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당권주자들은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실정(失政)만 비난하며 반사이익만 누리다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한목소리로 자성(自省)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들도 반사이익에 편승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유권자들은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한나라당을 외면할지 모른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