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신비]전두엽 잘라내면 판단력 사라져

  • 입력 2003년 6월 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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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영화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 캐서린 헵번은 외과 의사(몽고메리 클리프트 분)에게 조카인 리즈 테일러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뇌를 수술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사실을 안 리즈는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면서 ‘어딜 수술 하실거예요. 여긴가요, 저긴가요’하며 울부짖는다.

결국 정신 이상자는 리즈가 아닌 캐서린 자신임이 밝혀져 리즈는 수술을 면하게 된다.

이때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하려 한 부위는 전두엽(이마엽·앞뇌)의 가장 앞부분이다. 당시 만해도 전두엽의 앞쪽을 일부러 손상시키는 수술, 즉 전두엽 절제술이 시행됐다. 현재는 이런 수술은 하지 않는다.

1930년대 전두엽을 손상시킨 원숭이는 얌전해진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용감한 인간은 항상 있는 법이다.

이런 발표에 감명 받은 포르투갈의 신경외과 의사 에가스 모니츠는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정신과 환자들의 전두엽을 손상시키면 증세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수술을 시행해 보니 과연 환자들의 난폭한 증세가 사라졌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는 난폭한 행동보다 더욱 커다란 문제가 새로 발생했다. 비록 얌전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매사에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인간이 되었다. 단순 작업 밖에는 할 수 없게 된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모니츠는 전두엽 절제술을 최초로 시도했다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동물실험 결과를 함부로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려준 사람이다.

그렇다고 모니츠의 공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뇌혈관을 검사하기 위해 지금도 사용하는 ‘뇌혈관 조영술’이란 진단 검사법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주변 상황과 자신의 경험을 종합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곳이다. 이러한 전두엽의 중요한 기능을 우리는 모니츠의 수술 결과를 통해 거꾸로 알아낼 수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고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취사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이라는 배를 만들기 위한 뼈대’라고 했다. 둘 다 실은 전두엽의 기능을 이야기한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는 바로 전두엽 때문이다.

김종성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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