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당당한 하은주… 비겁한 언론들

  • 입력 2003년 5월 26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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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가 오는지 안 오는지 모릅니다. 아무 연락이 없었어요.”

일본국적을 취득한 여자농구 기대주 하은주(19)의 아버지 하동기씨는 25일 이렇게 말했다. 하은주가 일본 샹송화장품 선수단과 함께 한국 땅을 밟기 불과 1시간 전이었다. 외국에 나가있던 딸이 오랜만에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모른다니….

또 있다. 샹송화장품에게 전지훈련 장소를 제공한 여자프로농구팀 신세계의 이문규 감독은 “샹송팀은 저녁에나 올 것같다. 하은주가 오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 서초동에서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도착 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타나서는 “갑자기 연락받고 왔다”는 군색한 변명을 해댔다.

그러다 취재진을 향해 “내가 뭘 잘못 알려줬느냐”며 고성을 지르더니 선수단과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는 손님이 언제 도착하는지도 몰랐다니….

막상 하은주의 태도는 달랐다. 중학교 때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한 채 일본으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 희망을 찾았고 일본 국적을 얻어 샹송화장품에서 농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일시귀국한 하은주는 자신이 내린 선택에 어떤 후회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주위 ‘어른’들은 달랐다. 하은주 빼돌리기에 급급했던 그들이 내세울 명분은 듣지 않아도 뻔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호는커녕 괜한 오해만 사버린 격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은주는 이미 지난해 11월 귀화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그동안 주위의 ‘어른’들은 이를 감추기에 바빴다. 그 바람에 국내 농구계가 지난달 일본농구협회를 찾아가 귀화신청을 재고해달라는 부탁까지 했으니 촌극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너무 망신스럽다.

뭘 그리 감추고 싶었던 걸까. 하은주의 귀화에 거리낌이 없었다면 주위 어른들도 솔직해야 했다.

그의 귀국여부를 놓고 벌어진 해프닝도 마찬가지다. 하은주의 귀화가 주위 어른들이 밀실에서 짠 각본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른들의 거짓말이 하은주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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