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세계를 바꾼 지도'…지질학의 탄생이야기

  • 입력 2003년 5월 16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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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미스가 1815년에 혼자 힘으로 제작한 영국 지질도(왼쪽)와 영국지질조사소에서 만든 현대의 지질도.사진제공 사이언스북스
윌리엄 스미스가 1815년에 혼자 힘으로 제작한 영국 지질도(왼쪽)와 영국지질조사소에서 만든 현대의 지질도.사진제공 사이언스북스

◇세계를 바꾼 지도/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임지원 옮김/423쪽 1만8000원 사이언스북스

200년 전 영국의 한 지질학자 이야기,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질학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지질학’이란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으니까.

사실 일반인에게 지질학이란 요즘도 생소한 학문이다. 땅 속에 있는 ‘뭔가’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질학의 탄생’이라는 따위의 접근은 머리만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오히려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개념’을 입증하고 보급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 사람의 순탄치 않은 일생을 엿본다고 생각하면 분명 흥미진진하게 읽힐 듯하다.

책의 주인공인 윌리엄 스미스는 1769년 3월 23일 영국 옥스퍼드셔 처칠의 작은 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미스는 여덟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후 얼마간 삼촌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도 없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달리 영민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파여진 땅의 단면을 보고, 또는 화석을 통해 지층의 차이를 알아챌 수 있는 능력, 나아가 지층의 변화와 차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게다가 그는 여행을 좋아하고 한 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 있었다. 스미스가 훗날 세계 최초의 ‘지질학 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이런 능력과 기질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1790년대 초반 스미스는 탄광의 측량사로 일하면서 지하세계에 처음으로 접근했다. 스미스는 어느 탄광이든 지층이 일정한 패턴으로 나타나고, 일정한 경사를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암석층은 모두 남동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므로, 그는 지표면을 평평하게 깎는다면 가장 오래된 암석층이 북서쪽에, 가장 새로운 암석층이 남동쪽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스미스의 업적을 폄훼하는 사람들은 “스미스가 운 좋게도 너무 알아보기 쉬운 배열의 지층에 접근했다”고 말하지만 당시의 많은 사람은 그런 배열을 보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이론’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스미스는 지층의 변화를 지도 위에 표시해 가며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의 노력은 20년에 걸쳐 계속됐다. 측량으로 번 돈을 쏟아붓기도 하고, 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쓰기도 하며 마차를 타고 영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결국 1815년 스미스는 드디어 세계 최초의 ‘지질도’를 만들게 된다.

사실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 즉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지도는 그런 의미에서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석을 알아보지 못한 구매자들의 외면 속에(그의 낭비벽도 한몫을 했지만) 스미스는 빚에 쪼들리며 채무자 감옥으로 향했고 아내는 병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비참한 생활로 빠져들게 된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진보적인 한 귀족이 그의 업적을 알아챘고, 오늘날 스미스는 ‘지질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이 책은 스미스의 일생을 단순히 나열하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책 중간 중간에 당시의 학문적,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적절히 녹여 이해를 돕는다. 중간에는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까지 소개하는 친절함으로 독자에게 지질학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준다. 주인공인 스미스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은 것도 미덕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전기문보다는 마치 소설처럼 다가온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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