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차세대 TV 승자 누가 될까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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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이 날렵하고 디자인이 세련된 느낌이다. 해상도가 우수하고 화면이 자연스러워 거실에서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삼성전자 50인치 PDP TV)

“같은 크기의 경쟁 제품에 비해 해상도가 두드러진다. 고화질(HD) 방송을 시청할 때는 화면의 섬세함이 두드러진다.”(소니 42인치 PDP TV)

한국 및 일본 업체의 디지털TV 제품에 대한 국내 AV(오디오 비디오) 전문 동호회 사이트의 평가에서 어느 한쪽이 좋다거나 우월하다고 결론을 내릴 만한 품질 차이를 찾기 어렵다. 디지털방송 시대를 맞아 각국의 소비자들은 요즘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디지털컨버전스 시대의 황금사업으로 떠오른 디지털TV 시장을 놓고 한일간의 기술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전문 마케팅업체 디스플레이뱅크의 김광주 상무는 “디지털TV의 세계시장 규모는 올해 110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250억달러 이상으로 급성장이 예상돼 한일 기술경쟁의 최대 격전지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

▽막 오른 한일 디지털TV 경쟁=이라크전 전황 때문에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이 TV에 고정돼 있던 지난달. LG전자의 디지털TV는 행방이 묘연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모습만큼이나 자주 방송을 탔다. 카타르 도하의 미 중부군사령부 브리핑실에 설치된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5대가 모두 LG전자의 제품이었기 때문. LG전자는 덕분에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막대한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디지털TV 시장은 그동안 소니, 마쓰시타 등 일본 업체들이 주도해왔지만 올 들어 한국 업체의 위상이 치솟고 있다. 한국 업체들은 PDP 및 액정(LCD) TV를 공격적으로 선보이면서 시장 선점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2005년에 세계 1위 업체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은 고급형 가전 및 아날로그 컬러TV 분야의 우세를 고부가가치 디지털TV 시장으로 이어간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신만용 부사장은 “디지털TV를 비롯한 디지털미디어 사업에는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다”며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TV는 디지털컨버전스의 꽃=한국과 일본의 업체들이 디지털TV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까닭은 TV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 ‘정보화 시대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TV가 디지털TV의 등장으로 정보화의 핵심기기로 부활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가장 반기는 곳은 최강의 TV 브랜드 업체인 소니. 안도 구니타케 소니 사장은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 2003)에서 “디지털TV는 디지털컨버전스를 앞당기는 가장 대중적인 정보기기가 될 것”이라고 밝혀 디지털TV 시장 경쟁에 불을 붙였다. 소니는 디지털TV에 PC, 휴대전화기, 오디오, 게임기 등 자사의 제품을 연결해 디지털컨버전스 시장을 선도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업체들도 PC와 반도체 경기 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차세대 주력 수출품목으로서 디지털TV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불붙은 화질 경쟁=소니가 삼성전자보다 컬러TV를 적게 팔면서도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비결은 독창적인 화질 기술이었다. 소니는 ‘DRC(Digital Reality Creation)’ 기술과 주사선을 촘촘히 배열한 ‘트리니트론’ 브라운관을 앞세워 ‘베가TV’를 세계적인 고선명TV 브랜드로 정착시켰다. 소니는 화질 개선 기술인 ‘베가엔진’을 PDP, LCD, 프로젝션 TV 등 디지털TV 상품에도 적용해 아날로그 시대의 명성을 잇는다는 전략. LCD TV시장의 선두주자인 샤프의 경우 영상의 선명도를 높여주는 ‘ASV’와 잔상을 줄이는 ‘퀵슛’이라는 화질 개선 기술을 자사의 ‘아쿠오스’ 제품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 업체들도 이에 맞서 화질 개선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TV의 화질을 높여주는 ‘DNIe(Digital Natural Image engine)’ 칩을 개발해 본격적인 화질 경쟁에 뛰어들었다. 신만용 부사장은 DNIe 기술에 대해 “30여년 삼성전자 TV 역사의 결정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DRP(Digital Reality Picture)’란 화질 기술을 디지털TV 전 제품에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브랜드, 한국은 소재가 강점=한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에도 불구하고 디지털TV 시장에는 ‘브랜드의 벽’이 존재한다. 디지털TV가 고급품으로 올라갈수록 일본 제품이 선호되는 것. 삼성전자 김영윤 상무는 “브랜드 경쟁력에서는 아직도 한국 제품이 열세”라며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브랜드 마케팅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밝혔다.

브랜드 파워와 영상 분야의 원천기술이 일본 업체의 장점이라면 한국은 주요 제조업체들이 LCD 및 PDP 패널, 반도체 등 디지털TV의 관련 소재 사업을 겸하고 있어 기술 및 가격 경쟁력 확보가 유리하다는 평가. 소니, 마쓰시타,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은 디지털TV의 핵심장비인 LCD와 PDP 패널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외부 업체에 의존하고 있어 한국의 추격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TV 시장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기술 격차가 거의 사라진 상황”이라며 “색상이나 색감 표현 등 미세한 부분까지 기술력을 높이고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면 한국 업체의 디지털TV 시장 석권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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