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尹부총리는 어디 있었나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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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결정에 초상집이 됐는데 부총리는 어디서 뭘 하는 겁니까. 누가 이런 조직에 충성하고 싶겠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동안 논란이 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일부 영역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NEIS에서 교무학사, 보건, 입학 및 진학 등 3개 영역을 제외하라고 결정한 12일 오후 교육인적자원부 직원들은 교육부총리를 찾고 있었다.

교육부 직원들은 인권위가 교육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전교조의 손을 들어주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더 당황하게 만든 건 곧바로 대책 논의를 주재해야 할 윤덕홍(尹德弘) 부총리가 외부 약속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이다. 이날 오후 6시50분경 인권위 결정이 나오자마자 차관과 실무자들은 인권위 권고안을 교육부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숙의했지만 윤 부총리가 외부에 있어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교육부는 윤 부총리와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한 끝에 “학교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인권위의 결정은 유감이지만 인권위의 권고를 존중한다. 권고안의 시행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를 열어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전교조는 인권위 발표가 나자마자 환영 성명을 낸 데 비해 교육부는 1시간40분이 지나서야 3문장짜리 자료를 낼 수 있었다. 윤 부총리는 이 자료의 내용에 대해서도 명확한 의견을 내놓지 않아 실무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전교조에 ‘완패’를 당한 교육부 직원들은 “사실 부총리 때문에 NEIS가 엉망으로 꼬인 측면이 있지 않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윤 부총리는 취임 직후 방송에 출연해 이미 시행에 들어간 NEIS에 대해 “문제가 많아 시행을 유보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파문이 일자 서둘러 취소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이번 인권위 권고안을 처리하는 데도 윤 부총리의 ‘말’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생각이다. 이미 윤 부총리가 교원단체나 학부모단체를 만날 때마다 “인권위의 결정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공언해 놓은 터여서 인권위 권고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에서 교육부에 파견 근무 중인 한 직원은 “나도 교사지만 교사들이 어떻게 하면 NEIS를 편리하게 쓸 수 있을까 궁리하며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우리가 그렇게 나쁜 일을 한 것이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13일 교육부는 인권위 결정에 따른 혼란에다 윤 부총리의 언행에 대한 실망 등이 뒤섞여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인철 사회1부 차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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