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옛 애인의 집'…지리산서 보내온 절절한 육성

  • 입력 2003년 5월 9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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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애인의 집/이원규 지음/168쪽 7500원 솔

‘지리산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철 잘 놀았다. 詩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했던가. 6년 만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自序’)

지리산에서 독거하는 시인 이원규(41)가 네 번째 시집 ‘옛 애인의 집’을 펴냈다. 관계 맺는 모든 것과 결별하고 외로움을 견디는 시인의 육성이다. 스스로 적막에 잠긴 시인의 목소리는 절절하고도 지독하다.

‘밤새 너무 많이 울어서 두 눈이 먼 사람이 있다’ (‘부엉이’)

‘밤마다/ 이 산 저 산/ 울음의 그네를 타는/ 소쩍새 한 마리/ 섬진강변 외딴 집/ 백살 먹은 먹감나무 찾아왔다/ 저도 외롭긴 외로웠을 것이다’ (‘동행’)

그러나 시인이 세상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가끔 뒤를 돌아 바라도 보고, 자연과 더불어 하나 되기를 소망하는 생(生)의 박동이 뛰기도 한다.

‘한밤중에/ 날 부르는 이 누구인가/ 발소리 죽이며/ 지리산까지 찾아와/ 봉창문을 두드리는 이 누구인가/ … 알몸으로/ 강변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에/ 여울의 은어 떼만 솟구치네’ (‘날 부르는 이 누구인가’)

중고 오토바이 한 대, 노트북 한 대가 전 재산인 시인은 지리산 곳곳의 버려진 빈집과 절방을 옮겨 다니며 시를 쓴다. 이원규는 시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1997)로 제16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았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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