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기홍/강남, 강북 그리고 지방

  • 입력 2003년 4월 27일 18시 28분


코멘트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당신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어느 신혼부부가 온라인상에서 다음과 같은 상담을 했다. “집 장만은 나중에 하고 그 전에 재건축 아파트를 살 생각입니다. 물론 1년 안에 팔 생각이고요. 아무리 정부가 규제한다고 해도 적당히 버티면 재건축 아파트 값은 폭등한다는 게 저희 둘의 생각입니다. 유망한 곳 한 곳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2001년 말부터 시작된 강남권의 아파트 값 폭등을 바라보면서 강북에 사는 사람들은 심각한 박탈감을 토로했다. 한국은행 박승 총재까지 그런 사실을 인정했을 정도다. 그래서 사석에선 “지금이라도 강남으로 들어가야 돼”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한두 푼으로 되는 일인가. 그러니 서울의 강남과 강북은 같은 도시이긴 하되 같은 도시가 아니다. 직장을 따라 지방으로 와 보니, 지방 사람들의 서울 아파트 값을 보는 시각은 ‘먹지 못하는 감’ 수준이다. 강북 변두리에 겨우 허름한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엄연히 ‘서울 아파트’이고, 따라서 그런 아파트라도 하나 갖고 있으면 지방 기준으로는 상당한 부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가 무조건 비싼 줄 아는 지방 사람들은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 값이 지방의 가장 비싼 아파트보다는 싸다는 것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지방에서의 짧은 생활 경험은 대한민국이 강남과 강북, 그리고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가르쳐 준다.

▷참여정부 차관급 이상의 재산공개에 따르면 대통령의 재산은 2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강남 지역 10평짜리 재건축 아파트도 못 살 돈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온라인상에서 상담을 한 신혼부부와는 달리 재건축 아파트를 ‘간절히’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일반인들은? 신혼부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건축 아파트를 얻어도 그것 역시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담론은 ‘웃기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 사람들은?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달관이 아니라 ‘거대한 블랙홀’, 서울에 대한 체념 때문이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대한민국은 잘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값 하나 때문에 신혼부부까지 ‘투자적 투기자’로 몰리고 강북을 포함한 거대 서울이 나날이 부자가 되어가느라 지방은 ‘딴 나라’로 내몰리는 이 현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김기홍 객원논설위원·부산대 교수 gkim@pusan.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