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84회…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 (12)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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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로 힘들었다. 오전에는 실습장 채소에 물 줬재, 오후에는 송진 채집하러 갔재. 양이 적으면 선생이 뭐라꼬 혼내니까, 다들 정신이 없이 땄다. 이제 영남루 근처 나무들은 껍질 있는 거 별로 없다, 그래서 오늘은 용두산까지 갔다 왔다. 철물가게 연지, 가 나무타기 잘 하는 거 알재? 다들 무서워서 못 올라가니까네, 가까운 데 나무라도 높은 가지는 껍질이 좀 남아 있다 아이가. 그란데 오늘 연지가 올라갔다, 꼭대기까지. 그라다가 떨어져버렸다, 가곡동 박 의원네 갔더니, 오른 다리가 뿌러졌다 캤다더라.” 우근이 열무김치를 씹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우짜다가. 밑에 돌이라도 있고 머리부터 떨어지면 어디 다리만 부러지겠나”라며 희향이 눈살을 찌푸렸다.

“삼촌, 송진은 우째 따는데?”라고 미옥이 숟가락으로 수제비를 뜨면서 말했다.

“나무 껍질을 과도로 벗기든가, 가지를 꺾는다. 그라면 조금 있다가 노란 수액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걸 기름종이에 싸는 기라. 그라면 금방 말라서 굳는다.”

“맛있나?”

“묵는 거 아이다. 호롱불 기름으로 쓰는 거 아인가 몰라.”

“군수용이다”라고 우철은 수제비 국물을 삼키며 말했다.

“뭐에다 쓰는데?” 우근은 숨죽인 듯한 눈빛으로 터울진 형을 쳐다보았다.

“화물자동차 연료로 쓴다.”

“이 봐라, 송진이 손톱에 껴서 새카매졌다. 매매 씻어도 영 안 벗겨진다. 봄에는 포플러면 따느라고 고생했재.”

“포플러면은 군복에 쓰는 기다.”

“미야케 선생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인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카면서.” 우근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빛나는 눈으로 형의 얼굴을 보았다.

“일본 아들이 다니는 심상 소학교 숙제에는 송진 채집하고 포플러면 채집 같은 거 없다.”

“…가는 길에 솔잎하고 속껍질도 좀 따오라고 했습니다. 솔향기가 나지예, 쌀가루에 속껍질을 좀 섞었습니다. 오오, 내 새끼.” 인혜는 잠에서 깨려 버둥거리는 딸을 왼팔로 어르면서 오른손으로 수제비를 떠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제 지 손으로 먹으라 캐라. 세 살이다.” 희향이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고 수제비 그릇에 목소리를 떨궜다.

우근은 송편을 집어 바라보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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