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박민혁/다수당의 '이상한 힘'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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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5시경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북 비밀송금 특검법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며 온갖 전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기자실을 찾은 주요 당직자들은 앞다퉈 “다수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동원해 사사건건 노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다수당의 힘’을 강조했다. 정부가 낸 법안은 통과시켜 주지 않을것이며, 정부의 예산안도 처리해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도덕성 등에 문제가 있는 장관들에 대해서는 해임건의안을 무더기로 내서 새 정부를 흠집내겠다는 전략도 빠뜨리지 않았다.

당직자들은 자칫 다수당의 힘을 당리당략에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그럴듯한 이유도 붙였다.

“그동안 정부가 낸 법안은 정부의 편의를 위한 게 많았다. 사실 필요 없는 법안도 있었지만 협조해 준 것이다.”

“대통령비서실 확대 때도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문제를 삼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장관에 대해 지금까지는 대충 넘어갔는데 해임건의안을 바로 올리겠다.”

그러나 한 시간 뒤 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특검법을 받아들이자 한나라당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상생의 정치’를 펴겠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다”며 노 대통령을 극찬하는 말도 쏟아졌다. 한 중진의원은 “예산처리와 경찰청장 등 인사청문회부터 어느 정도 협조를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특검법 공포의 대가로 ‘정부 편의만을 위한 법안’을 이전처럼 통과시켜 주고, ‘문제 있는 예산’도 상생의 정치를 위해 처리해 주겠다는 뜻으로 들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이는 그동안 불요불급한 입법 및 예산편성에 ‘공조’를 해 왔다는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특검법 공포를 관철하기 위해 현재 시행 중인 정부의 법안과 예산을 ‘불필요하고 문제투성이’인 것으로 과장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 있는 법안이라면 특검법 공포와 관계없이 문제삼아야 한다. 문제 있는 장관도 마찬가지다. 다수당의 힘은 편의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쓸 수 있는 ‘폭력’이 아니다.

박민혁기자 정치부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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