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경제부총리의 '거짓말'

  • 입력 2003년 3월 11일 18시 54분


경제부처를 맡고 있는 본보 기자들은 10일 각 경제장관을 상대로 ‘SK수사 외압설’과 관련된 고위 경제관료가 누구인지를 취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SK수사 과정에서 여당 중진인사와 정부 고위인사가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관련’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비서실에 전화를 했다. 최중경(崔重卿) 부총리비서실장은 “부총리가 지금 다른 일로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부총리에게 직접 물어봐서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약 1시간 뒤 최 비서실장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부총리는 SK수사와 관련해 검찰측과 접촉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의 ‘검찰 접촉’ 사실이 밝혀지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11일 오전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김 부총리와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이 검찰총장을 만났다”고 밝힌 것. 그러자 김 부총리는 이날 오후 “금감위원장과 함께 검찰총장을 만났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 비서실장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는 “검찰과 접촉한 사실이 없었다는 어제 이야기는 부총리 말씀이 아니라 내가 그냥 짐작해서 한 말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를 믿을 수 있을까. 경제팀의 ‘맏형’인 재경부에서 비서실장이 국민적 관심이 쏠려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부총리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고 짐작만으로 언론의 공식확인 요청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답변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경제부총리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사건에 대해 수사발표의 속도조절을 부탁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수사 검사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됐다면 얼마든지 떳떳하게 밝히고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거짓말’은 곤란하다. ‘경제팀 수장(首長)’인 경제부총리의 신뢰 손상은 개인의 도덕성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앞으로 김 부총리의 말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김광현기자 경제부 kkh@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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