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野, 대통령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나

  • 입력 2003년 3월 11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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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與野) 영수회담 추진과정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갈팡질팡 행보’는 원내 제1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당초 어제 한나라당에서 갖기로 했던 영수회담이 당내 반발로 연기됐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오늘 청와대 회담으로 번복된 것은 ‘구심점 없는 거대 야당’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영수회담이 자칫 대통령의 특검제 거부에 들러리나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한나라당측의 의구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검에 대한 당론이 확고하다면 당당히 회담에 응해야 했다. 상대의 의견을 들어보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면 논리적으로 거부하는 의연한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더구나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제는 이미 국회를 통과한 사항이다. 단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지레짐작해 회담 자체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혼선을 빨리 수습해 한나라당이 오늘 영수회담에 응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영수회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단지 특검제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새 정부 출범 후 여야 영수가 만나 민생문제 등 국정 현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여권도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오늘 영수회담을 ‘특검제 거부를 위한 절차’쯤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여론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내 계파간 갈등과 이념의 혼재 속에서 집안싸움이나 계속하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국정의 한 축으로서 새 정권을 견제하는 한편 상생정치를 주도해 나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 새 정부가 잘하기를 바라는 만큼 한나라당 역시 강한 야당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영수회담은 그 단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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