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재/‘비난의 돌’ 던지기 前에

  • 입력 2003년 2월 25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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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한 2세 경영자에서 구치소에 갇힌 신세가 된 대기업 회장. 여느 날과 같은 일상에서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한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지난주에 우리 눈앞에 펼쳐진 두 장면에서 우리는 관련자들이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봤다.

편법상속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崔泰源) SK㈜ 회장과 SK의 경영자들. 그리고 한순간의 어처구니없는 잘못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게 한 지하철공사 직원들. 법을 어긴 것으로 판명되면 처벌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의 잘못으로 큰 사고가 났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만 돌을 던진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최 회장은 속으로 억울해 할지 모른다. ‘다들 그렇게 해 왔는데 왜 나만…’이라는 억하심정을 가질 법하다. 그의 혐의라는 게 따지고 보면 정도의 문제일 뿐 재벌가에 일반화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지하철공사 직원들도 ‘승객을 사지에 남겨두고 달아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생각지 못하고 목을 죄어오는 연기 속에서 단지 생존본능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허술한 법망과 제도를 두고 기업인의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감만 강조하는 것은 공허하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구나 훌륭한 순간 상황 판단과 영웅적 용기를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부도덕성이 죄라기보다는 모호한 규정이 이기심을 부추긴 게 문제일 것이고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훈련이 되지 않은 방재시스템에 더 큰 죄가 있을 것이다.

자기 이익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약해진다. 자기 안전을 먼저 찾는 걸 나무랄 수는 없다. 혼잡한 은행 객장에서 고객들이 줄을 서도록 만든 것은 시민의식 교육이 아니었다. 번호표라는 아주 간단한 시스템이었다.

그들을 비난하며 던질 돌을 준비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이명재 경제부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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