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월 27일 19시 0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무릇 무기란 것이 다 그렇지만, U-2기는 특히 치열했던 냉전 대결이 낳은 산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50년대 후반 흐루시초프는 서방에 대해 “우리가 당신네 장례식을 치러 주겠다”고 허풍을 떨었고, 서방세계는 이 같은 협박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던 분위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경악했던 미국은 장거리 폭격기 부문에서도 소련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 대통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의 장막’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고, 그 한 가지 방안으로 앨런 덜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U-2기 개발을 직접 지시했던 것이다.
▷U-2기 개발에서 핵심 과제는 적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고고도(高高度) 장거리 비행을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점이었다. 이를 위해 록히드사의 비밀개발팀은 날개폭을 기형적으로 길게 한다든지, 기체를 최대한 가볍게 만들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냈다. 그 결과 56년 7월에 있었던 최초의 소련영공 비행에서 U-2기는 지상 20㎞ 상공을 유유히 날면서 추격해 온 소련 요격기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었다. 그 후 U-2기는 62년 쿠바에 배치된 소련 미사일을 탐지해내는 등 수많은 활약으로 미 첩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엊그제 경기 화성시에서 U-2기 추락사고가 일어나 이 비행기가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일상은 평화로운 듯 싶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 저 꼭대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첩보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 준 사고였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위기설이 수그러들지 않는 시점에 발생해 그런지 더욱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한반도가 ‘냉전의 고도(孤島)’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벗어버리고 U-2기의 첩보비행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